전장연, 대선후보에 예산반영 요구… “장애인 콜택시 등 국비 지원해야” 연이은 시위에 열차지연 반복되자 “이해한다” “출근에 불편” 엇갈려 서울교통공사엔 민원 빗발쳐
“욕을 먹더라도 알리고 싶습니다” 14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대선 후보들의 장애인 예산 보장 공약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로 출근 시간대 지하철 5호선 열차 운행이 30여 분간 지연됐다. 뉴스1
14일 오전 7시 반.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 10여 명이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해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걸고 한 명씩 열차에 탑승했다. 휠체어를 탄 채 줄지어 탑승하느라 정차 시간이 길어졌고, 경찰과 역무원까지 몰려 플랫폼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됐다.
피켓에는 여야 대선 후보 4명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회원들은 마이크를 잡고 “죄송하지만 바쁘신 분들은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며 약 10분 동안 차량 안에서 요구사항을 외쳤다. 한 승객이 “시간을 정해놓고 시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한 전장연 회원은 “저희를 비판하는 것만큼 국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날 전장연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출발해 광화문역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시위를 벌였고, 5호선 열차 운행은 약 30분 동안 지연됐다.
○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전장연은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를 확대해 달라면서 이달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로 평일 기준 8일 연속이다. 지난해부터 월 1회, 연말부터는 주 1회꼴로 시위를 했지만 설 연휴 직후부터 매일 하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차량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이동지원센터 운영비와 전용 콜택시를 비롯한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전장연의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31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 등도 요구에 들어 있다. 시위 빈도가 잦아진 것은 대선 때문이다. 전장연 측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에게 요구사항을 전하기 위해 평일 출근시간대 시위를 매일 진행 중이다. 후보 중 누구라도 집권 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약속해야 시위를 멈출 것”이라고 11일 밝혀 상당 기간 시위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 “시민 불편도 고려해야”
서울 서초구에서 마포구로 출퇴근하는 지체장애인 김승환 씨(26)는 “나도 장애인으로서 이동권 보장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직장인으로서 출근이 어려워져 불편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매일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변호사 신모 씨(29)는 “한산한 시간에 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며 “나 같아도 이 시간대에 시위를 할 것 같다”고 했다.
○ “언제 출발하나” 민원 잇따라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 10일까지 전장연 시위와 관련해 홈페이지와 앱을 통해 접수된 민원은 2180건에 달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현장에서 역무원들에게 ‘언제 출발하나’, ‘KTX에 탑승하지 못했는데 배상하라’는 등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시위 현장에는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과 역무원 등이 출동한다. 경찰 관계자는 “전장연 회원들이 구호를 제창하거나 피케팅 등을 진행하면 미신고 불법 집회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경고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홍보활동 위주여서 단속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전장연 측도 시민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이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시민들이) 100개의 욕을 하면 100개의 욕을 먹겠다. 그렇지만 한마디라도 기획재정부와 대통령 후보들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강조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