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억제’ 명목 2020년 1월 시행 2년새 서울 평균 집값 약 4억 오르며 ‘9억 넘어 전세대출 금지’ 사례 속출 “기준 올리거나 예외적용 확대해야”
서울 강남의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아파트 전월세 매물 가격표가 붙어 있다. 뉴스1
공공기관 직원인 김모 씨(37)는 2년 전인 2020년 초 서울에서 강원 원주시로 발령 났다. 당시 전세대출을 받아 원주 시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최근 계약 만기를 앞두고 은행에 갔다가 좌절했다. 현재 보유 중인 서울 송파구 20평대 아파트(전용면적 49m²) 때문이었다. 2019년 5억 원에 산 아파트 시세가 최근 9억 원을 넘겼다. 은행 직원은 “서울 집값이 많이 올라 전세대출 연장이 안 된다”며 “만기 시점에 대출금 전액을 갚아라”라고 독촉했다. 결국 그는 원주에서 월세로 거주할 집을 알아보고 있다. 김 씨는 “서울 집은 기존 세입자 계약을 연장해 나가라고 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셋집에 사는데 전세대출 연장이 안 된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 전세대출 규제에 실수요자 피해 속출
하지만 규제 당시 9억 원 이하였던 주택 가격이 대거 오르면서 해당 주택을 보유하며 전세 살던 1주택자들이 대출 연장을 거부당하고 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20년 1월만 해도 8억7000만 원이었지만 지난달 12억6000만 원으로 뛰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전용면적 84m² 아파트를 매수해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 씨(34)는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회사 순환 근무로 부산에서 일해야 하는데, 부산에서 전세대출을 받기 힘들 수 있다는 은행 상담을 받고서다. 그는 “보유 아파트 시세가 8억9500만 원으로 전세대출 실행 시점에 9억 원을 넘기면 대출이 아예 안 된다고 해서 부산 거주 주택을 월세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유명무실한 대출 금지 예외조항
앞으로 전세대출을 못 받는 ‘1주택 세입자’들은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20년 6·17대책을 통해 전세대출 규제를 더 강화했다. 2020년 7월 10일 이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3억 원 초과 아파트를 사면 전세대출 보증이 제한되고 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아파트를 사면 사실상 전세대출을 못 받게 된다. 시행일 이전 전세대출을 받고 그 이후 아파트를 매입해도 전세대출 연장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2년 전 규제 효과가 미미했고 규제 부작용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12·16대책 등으로 전세대출을 받지 못해 월세로 밀려나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다”며 “규제 적용을 받는 고가주택 가격 기준을 올리거나, 예외조항을 넓게 적용해서 실거주 목적을 인정해 전세대출을 허용해 주는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