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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중현]대선후보 배우자가 ‘웨이터’를 대하는 태도

입력 | 2022-02-17 03:00:00

폭로로 드러난 부인들의 품성
예방 못한 대선후보 면피 안돼



박중현 논설위원


경험 많은 미국 기업의 오너, 최고경영자(CEO)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꼽는 원칙 중 하나가 ‘웨이터 룰(Waiter Rule)’이다. 중역을 뽑을 때 여러 차례 지원자와 같이 식사하면서 그가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웨이터가 실수로 지원자 옷에 물을 쏟았는데 “오늘 샤워 못 한 걸 어떻게 알았지”라고 농담할 정도면 합격이다. 고용주에겐 공손하던 지원자가 종업원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면 같이 일할 건지 재고하거나, 꼭 써야 한다면 이런 점을 고려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고용주 같은 갑(甲)을 만날 때 지원자는 당연히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갑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밥을 먹다 보면 을(乙)인 종업원을 대할 때 감추고 싶은 성격이 은연중 드러나는 일이 생긴다. 종업원의 사소한 실수에 버럭 화내는 사람은 CEO 앞에선 착한 척해도 동료, 하급자를 대할 땐 다를 수 있다. 요컨대 ‘당신에겐 친절해도 웨이터나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다면 그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게 이 룰의 핵심이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 대선 후보 배우자들이 평소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하게 하는 녹취, 문자메시지 등 증거물이 잇따라 폭로됐다. 본인과 남편들이 거듭 사과했지만 이미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가 됐다. 해외 언론이 이번 선거를 ‘민주화 이후 가장 역겨운 대선’이라고 평가한 이유 중 하나도 배우자 문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의 경우 지난해 경기도청 총무과 5급 사무관 배모 씨, 당시 비서실 7급 공무원 A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한 음식들을 사저로 실어 나른 일이 A 씨에 의해 폭로됐다. 배 씨는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신이) A 씨에게 요구”했다고 해명했지만 어느 날은 초밥, 다른 날은 백숙을 김 씨가 원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자기가 값을 안 치른 음식이 집에 배달돼도 문제 삼지 않은 김 씨는 이런 서비스를 당연한 일로 여긴 모양이다. 또 자기 집 옷장을 정리하고, 로션을 채워 넣은 A 씨에 대해 “첫날 인사한 것이 전부”라고 한 걸 보면 그를 투명인간 취급한 것 같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인 김건희 씨는 한 인터넷 매체 직원과 52차례 통화한 녹음파일이 폭로됐다. “미투는 돈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것 아니냐”는 황당한 말, “이재명이 된다고 동생 챙겨줄 것 같아. (캠프 와서) 잘하면 1억도 줄 수 있다”는 일종의 취업 제안까지 했다. 김 씨와 ‘누나, 동생’ 사이가 된 사람은 손해 볼 것 같진 않지만, 남편이 대선을 치르는 와중에 정체가 애매한 인물과 이런 수다를 떨었다는 데서 인간관계의 허술함이 드러났다.

부인들의 드러난 민낯은 대선 후보들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일 뿐 아니라 낯 뜨거운 일이다. 그래선지 TV 토론에서 두 후보는 상대 배우자 공격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도 민망하긴 마찬가지지만 평소 대선 후보 부인들의 ‘웨이터 대하는 태도’를 엿볼 기회가 생겼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더욱이 대선 후보들이 오래 같이 살면서도 배우자의 이런 품성과 약점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알고도 방치했다면 ‘나라의 CEO’가 되겠다는 후보들의 사람 보는 눈을 의심해 봐야 한다.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머슴 행세를 하는 사람”이라는 샤를 드골의 말처럼 선출되기 전 한없이 고개를 숙이던 정치인과 그의 가족이 집권 후 표변하는 걸 국민은 수없이 경험했다. 대선 후보가 배우자 리스크를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 국민이 대신 판단해줄 수밖에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