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용 칼, 테이저건, 최루액 분사기. 여자 스노보드 1인자인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22)이 집 밖을 나서면서 챙기는 물건이다. 경기장을 갈 때, 강아지 산책 시킬 때, 집 근처 식료품점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다. 평창에 이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사상 첫 2연패를 달성한 국가대표도 두려움 없이 거리를 걸을 수 없을 만큼 미국의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심각하다.
▷클로이 김은 미국에선 증오범죄 공론화에 앞장서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ESPN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을 일상으로 겪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 계기가 됐다. 2013년 애스펀 X게임에서 첫 메달을 딴 후 “백인 소녀의 메달을 훔쳤다”는 악플에 시달리기 시작해, 평창에서 우승한 후론 “멍청한 동양인” 같은 문자폭탄을 받았으며, 부모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병원에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걸려 올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그는 정신적 충격으로 평창 이후 22개월간 스노보드를 접어야 했다.
▷클로이 김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베이징에서 다시 정상에 서자 미국 언론은 세계적인 스타도 피해가지 못하는 아시아계 혐오범죄의 심각성을 조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백악관도 움직였다. 15일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젠 사키 대변인은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엄중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클로이 김이 피해를 호소하고 바이든 정부 들어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339% 늘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평범한 아시아계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4, 15일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증오범죄 규탄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30대 한국계 여성이 노숙인에게 살해당하고, 한국 외교관이 길거리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예방책을 촉구하는 집회였다. 참가자들은 “두려움 없이 거리를 걷고 싶다”고 외쳤다.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가 그런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 줄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