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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마디 못 듣고’ 日 강제징용 피해자 박해옥 할머니 별세

입력 | 2022-02-17 13:05:00


일제강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돼 강제노역 피해를 입은 박해옥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16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기업 등을 상대로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했던 박해옥 할머니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별세했다.

박 할머니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 직후인 1944년 5월말 일본인 교장의 거듭된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됐다.

당시 일본인 교장은 “일본에 가면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수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할 수 있다”며 일본행을 강요했다.

또 일본인 교장은 박 할머니가 따르지 않자 “너희 언니가 학교 선생이니까 네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느냐” “부모가 대신 경찰에 잡혀갈 것이다”며 협박을 하며 동원했다.

미쓰비시에 도착한 박 할머니는 굶주림을 견뎌가며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해방 후 귀국했다.

뒤늦게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와 일본 내 지원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등에 힘입어 1999년 3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현지에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10여 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2008년 11월 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도 최종 패소했다.

패소의 아픔이 아직 가시기도 전인 2009년에는 뒤늦게 일본정부가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99엔을 지급, 또 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이후 2012년 10월 24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 1, 2심 승소에 이어 6년 여 소송 끝에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3년 3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배상 이행은 커녕 사죄 한마디 못 듣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판결 이행을 거부한 데다 일본정부까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함에 따라 원고 측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 내에 가지고 있는 상표권, 특허권에 대해 압류 등 강제집행에 나선 상태다.

고인의 특허권 2건의 경우 지난해 7월 20일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항고가 기각된 데 이어 12월 27일 대법에서 재항고마저 기각돼 압류가 최종 확정됐다.

광주에서 오랜 기간 투병해 오던 고인은 2019년 가을 자녀들이 있는 전주로 옮겨 지금껏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해왔다. ‘건강을 되찾아 다시 오겠다’며 남구에 거주하던 집과 생활하던 물품도 그대로 두고 가셨지만 결국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지난 2018년 대법원의 승소 판결을 이끌어 낸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피해자 5명 중 생존자는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등 2명으로 줄었다.

고인은 평소 “지난날 우리들이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젊은 학생들에게 일러줘야 한다”며 “10대 어린 아이들까지 데려다 혹사시킨 미쓰비시는 반드시 사죄하고 그 값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할머니와 투쟁을 함께했던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내 허망하다”며 “좋은 나라 가서 훨훨 날아다니라고 기도 많이 하겠다”고 슬픔을 표현했다.

빈소는 전주 예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18일 화장 후 전주 인근 호정공원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광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