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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윤완준]안보리서 러 꾸짖은 우크라 대사의 외침

입력 | 2022-02-18 03:00:00

공개무대서 “우리 주권 건드리지 말라”
사드 보복 中에 저자세 韓외교와 대비



윤완준 국제부장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공개회의를 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는 안보리 첫 회의였다. 유엔TV로 생중계된 이 회의에 15개 안보리 이사국이 참석했다. 미국이 소집을 요청한 이 회의는 개최 여부부터 투표해야 했다. 러시아가 회의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의장국인 노르웨이가 거수를 제안했다. 러시아 뜻대로 무산되려면 9표가 필요했다.

하나, 둘, 셋…. 10개국이 찬성에 손을 들었다. 인도 케냐 가봉은 기권했다. 회의 시작이 가능해졌다. 러시아와 함께 유일하게 반대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회의 참가국들이 돌아가며 발언을 시작했다. 시작은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였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은)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당신들 나라 국경에 10만여 군대가 집결해 있다면 얼마나 거북할지.”

발언 차례가 되자 장쥔(張軍) 주유엔 중국 대사가 “미국이 (실제를 과장한) 마이크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순서가 된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회의 개최를 반대한 “중국에 감사하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침공할 거라는 미국 얘기는) 증거가 없어요. 미국이 확성기 외교를 하고 있는 겁니다.”

중-러 대사는 비슷한 표현을 써가며 미국을 겨냥했다. 네벤자 대사는 미국이 제기한 국경 배치 병력 10만여 명 추산도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부추기면 “그 끝은 완전히 우크라이나에 최악이 될 것”이라는 위협도 잊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노르웨이가 안보리 의장국인 마지막 날이었다. 2월부터는 러시아가 한 달간 의장국을 맡고 있다.

8일 뒤인 2월 7일 러시아가 대북 제재 등 관련 안보리 공개회의를 소집했다. 생중계된 회의에서 러시아는 “일방적 대북 제재가 인도적 지원에 문제를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중국도 비슷한 주장을 하며 “일방적 제재”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은 “특정 국가 때문에 안보리의 제재 업무가 약화되고 있다”며 중-러를 비판했다. 북한과 우크라이나 관련 안보리 회의 모두 미국과 중-러 간 대립 구도가 선명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관련 회의에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이 있었다. 세르히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였다. 우크라이나는 안보리 이사국이 아니지만 당사국 자격으로 초청돼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는 러시아 병력 13만 명이 국경을 포위한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곤 우크라이나 침공 의도가 없다는 러시아 대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궁금합니다. 그럼 이 러시아 군대들이 왜 국경에 와 있는 겁니까?

키슬리차 대사는 “러시아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협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핵심 입장은 우리가 우리의 안보 (보장) 방식을 선택할 주권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러시아가 문제를 제기할 게 아니죠.”

강대국 러시아의 위협 앞에 우크라이나는 약자였지만 그는 안보리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꾸짖었다. 사드 배치라는 주권적 결정에 보복하는데도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는 우리 외교가 떠올랐다. 안보리에서 중-러 때문에 북한 미사일 대응이 무력화되는데도 항의하지 않는 우리 외교가 생각났다. 문재인 정부의 어떤 고위 외교관이 키슬리차 대사의 기개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