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차장
수년 전 중국 지린(吉林)성 류허(柳河)현 신흥무관학교 터를 여럿이 답사했을 때의 일이다. 한적한 시골 벌판에서 학교 흔적을 찾고 있는데, 낯선 중국인이 이쪽을 한참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다가와 이곳에 왜 왔는지, 무엇을 찾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당시 일행 중 한 교수가 지안(集安) 광개토대왕릉비 답사 때 중국 공안이 계속 따라다니며 자신을 감시한 경험을 들려줬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안창호 신채호 등이 1911년 설립한 항일투쟁 기지로, 3500명의 독립투사를 양성한 곳이다. 중국이 소수민족 동향에 민감하다고 하지만, 민간 학술조사까지 감시하는 행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와, 사회 전반에 노골적인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국가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深淵)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의 변곡점이 된 1941년 나치의 소련 침공 당시 스탈린이 보낸 지원열차가 여전히 독일을 향하고 있었다. 독소 불가침 조약에 집착한 스탈린이 나치의 침공 가능성이 높다는 소련 정보당국의 보고를 끝까지 무시했기 때문이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저서 ‘외교(diplomacy·1994년)’에서 대독 유화책으로 대응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스탈린 모두 히틀러의 본성과 의도를 오판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그만큼 전환기 국제관계에서는 기존의 판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국가의 진의(眞意)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정세의 판도를 바꾸려는 중국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최근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반중 정서를 계기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위협이 될지에 대해선 학계에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예컨대 국제정치학자 데이비드 강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과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조공질서가 안정적으로 운영됐음을 상기시키며, 부상하는 중국과 주변국의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안보를 위한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경제보복으로 응수하는 중국의 행태는 주변국에 신뢰는커녕 불안만 안겨줄 뿐이다. 중국몽의 이면에 도사린 진의에 경각심을 갖고, 끊임없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