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격론 끝 ‘그린 택소노미’ 포함… 美, 탄소중립 위해 원전 운영 지원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조건 내걸어 한국, 고준위 방폐장 첫발 못 떼고 사고 덜 나는 연료 상용화도 ‘아직’ 재생에너지 수급 등 종합적 고려를
2019년에 완공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 동아일보DB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은 각국의 핵심 정책 목표다. 탄소를 직접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활용한 에너지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게 골자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확정했다. 2020년 기준 29%를 차지하는 원자력에너지 비중을 2050년까지 6.1%로 줄이고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6.6%에서 70.8%로 늘린다는 로드맵이 포함됐다.
○ 원자력 발전, 탄소중립 위한 대안 될까
2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를 녹색경제 활동으로 인정하는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을 진통 끝에 내놨다.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EU 집행위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으로 원자력과 천연가스의 역할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부는 11일 60억 달러(약 7조2000억 원)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운영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에너지 시장과 경제 상황 변화 등의 이유로 조기 폐쇄되고 있는 원전에 2035년까지 운영금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조 바이든 정부의 기후 목표 달성에 원자력발전소는 필수”라며 “원전을 조기 폐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석연료를 활용한 발전 과정에서는 탄소가 배출된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는 메탄가스가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와 물이 나온다. 석탄발전소도 석탄에 포함된 탄소가 산소와 결합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이와 달리 풍력이나 태양광, 원자력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 과정에서는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2018년)에 따르면 1kWh의 전력당 탄소배출량은 원전이 12g으로 태양광(27g)이나 해상풍력(24g)보다 적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유럽과 미국이 원자력을 탄소 배출이 극히 적은 에너지원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조건은 있다. EU의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처분 계획과 사고를 덜 내는 핵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됐다. 미국에서도 원전 사업을 계속하면서 정부로부터 운영 지원금을 받으려면 원전을 폐쇄할 경우에 대기오염 물질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 “재생에너지 부족 여부 따라 원전 필요성 검토”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발전 분야 탄소중립에 원자력발전이 효율적이라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미국 카네기과학연구소 연구진은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42개국의 에너지 자원을 분석해 탄소 저감 정도에 따른 kW당 최적 비용과 전력 생산 조합(에너지 믹스)을 도출하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14일 발표했다.
분석 결과 미국과 호주 등 풍력발전에 유리한 국가는 원자력이 없어도 최적 비용으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는 반면 브라질과 한국과 같이 풍력발전에 불리한 조건을 갖춘 국가는 원자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에서 원전의 역할을 강조해온 빌 게이츠가 설립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가 참여했다.
노동석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은 “미래 에너지 비전의 최우선 목표를 ‘탄소중립’으로 정하면 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원 비중 확대, 에너지 수급 안정성, 목표 달성에 필요한 비용을 따지는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