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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러 침공 시나리오 제시…“우크라 전역 폭탄 투하”

입력 | 2022-02-18 03:06:00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회의에서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침공 각본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열거했다. 정보를 미리 공개해 침공을 막겠다는 의도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유엔TV로 중계된 안보리 공개 회의 발언에서 “평화와 안보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위협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곧 닥칠 듯한 공격”이라며 자국이 가진 정보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정보는 향후 며칠 내에 지상군과 항공, 선박을 포함한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공격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시사한다”라고 발언, 이날 미국 지도부에서 일제히 나온 침공 경고에 가세했다.

그는 “지난 몇 달 러시아는 정당한 이유 없이 우크라이나 국경과 러시아, 벨라루스, 점령지 크림반도에 15만 명이 넘는 병력을 집결했다”라며 “러시아는 병력을 줄이고 있다지만 현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러시아가 ▲공격의 구실을 지어내고 ▲대응을 명분으로 최고위급 비상 회의를 소집한 뒤 ▲공격을 개시한다는 게 블링컨 장관이 열거한 침공 각 단계다. 블링컨 장관은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계가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고 했다.

러시아 내 폭탄 테러 날조를 비롯해 폭력 사건, 민간인 상대 드론 공격, 화학 무기를 사용한 허위 또는 실제 공격 등이 ‘공격 구실’로 제시됐다. 블링컨 장관은 아울러 러시아 언론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전쟁을 정당화할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허위 주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언에서는 블링컨 장관의 개인사도 거론됐다. 러시아 측의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 학살)’ 주장과 관련해서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의 분장을 그간 제노사이드로 주장해 왔는데, 향후 공격 구실을 지어내면서도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블링컨 장관의 경고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는 이런 사건을 인종 청소 또는 제노사이드로 묘사할 수 있다”라며 이런 행위를 “우리가 가벼이 여기지 않는 개념에 대한 조롱”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 역시 “내 가족사에 기반해 (제노사이드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양부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일련의 공격 구실 날조 뒤 러시아가 연극하듯 비상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게 블링컨 장관이 제시한 두 번째 단계다. 그는 “제작된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은 연극적으로 이른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회의를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자국민 또는 러시아 민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포고문을 발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단계를 거친 뒤 마지막으로 실제 공격이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러시아의 미사일과 폭탄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떨어질 것”이라며 “통신 수단은 가로막히고 사이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의 핵심 기관들이 차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후 러시아 탱크와 군인이 핵심 목표물을 향해 진격할 것”이라며 러시아 측이 세부 계획을 통해 진격 목표를 이미 식별했다고 했다. 그는 “이들 목표물에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280만 명 시민이 있는 도시 키예프도 포함되리라고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아울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가하려는 계획은 재래식 공격만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러시아가 특정 우크라이나인 집단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정보를 보유했다”라고도 말했다.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단결의 날 행사를 위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나왔다. 서방 관리들이 러시아의 침공이 곧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단결의 날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우크라이나 국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오데사=AP

러시아의 향후 우크라이나 침공 단계를 상세히 열거한 이날 발언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가 아는 바를 세계에 공유함으로써 러시아가 전쟁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엄청난 세부 사항을 나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나는 전쟁을 시작하려는 게 아니라 예방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라며 “내가 이 자리에서 제시한 정보는 몇 달 동안 우리 눈앞에서 선명히 펼쳐진 것들을 통해 입증됐다”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는 반복적으로 우리의 경고를 멜로드라마와 난센스로 조롱해 왔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은 물론 막대한 군사 공격을 수행할 역량을 꾸준히 모아 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동맹·파트너국가도 이런 인식을 보유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러시아가 경로를 바꿨고 우리의 예측이 틀렸다고 증명됐다는 점에 안도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현재 향하고 있는 경로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는 어떤 비판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실제 침공이 일어날 경우 신속하고 단호한 결과가 따르리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러시아가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여전히 있다”라고 했다. 그는 “외교만이 이 위기를 해결할 책임 있는 방법”이라며 노르망디 형식 대화를 소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다음 주 유럽에서 만나자고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다”라고 밝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러시아위원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도 제안했다. 이를 통해 긴장 완화 맥락에서 정상회담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가 외교에 전념한다면 우리는 그 전념을 증명하기 위한 모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러시아를 향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병력과 탱크, 항공기를 돌려보내고 ▲협상 테이블에 외교관을 보내라고 촉구했다.

한편 러시아는 이런 미국의 주장에 곧장 반박했다. 세르게이 베르쉬닌 러시아 외무차관은 “오늘 이 자리에서 전쟁, 공격 같은 단어를 들었다”라며 “누구도 러시아를 대표해서 이런 단어를 말한 적이 없고, 말하지도 않으리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측이 돈바스 지역 분쟁을 다루는 민스크 협정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러시아 병력은 러시아 영토 안에 있었다”라며 “어제 병력 일부는 훈련 이후 러시아 본거지로 돌아갔다”라고 발언, 자국 병력 일부 철수 주장을 고수했다.



[워싱턴=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