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조선왕조의 본향 전주 태종, 조선 임금 유일 전주 방문… 이성계의 대권 꿈 시작된 곳 한 해 1000만명 찾았던 한옥마을… 시선 잡아끄는 자만벽화마을
태조로(가운데 길)를 중심으로 600여 동의 한옥이 들어선 전주한옥마을. 이 일대는 경기전, 오목대 및 이목대 등 조선의 뿌리와 관련 있는 유적들이 많이 있다.
《조선 27대 왕들 중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이는 아무도 없다.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점 외에는, 전주와 특별한 연결고리를 가진 왕도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왕들은 전주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다. 함흥 출생의 태종과 한양 출생의 세종은 공개석상에서 전주가 고향임을 애써 밝혔다. 최근 TV 사극으로 주목받고 있는 태종 이방원은 왕의 신분으로 전주를 방문한 유일한 군주이기도 했다. 태종의 자취를 좇아 풍패지향(제왕의 고향)인 전주를 찾았다.》
○사냥 핑계 대고 전주 찾은 이방원
1413년 10월 1일, 한양에서 출발한 태종의 어가는 마침내 완산성(전주성)에 도착했다. 그가 임금에 오른 지 13년 만의 일이자, 조선 임금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전주는 한양에서 직선거리로 500리(약 20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임금이 순행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거리다. 게다가 전주는 태종으로서는 정치적 부담감을 안고 있는 곳이다. 태종은 ‘왕자의 난’ 등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반대편에 섰던 전주의 유력 가문들을 제거했다. 호남 출신 개국공신인 심효생(부유 심씨), 오몽을(보성 오씨), 이백유(완산 이씨) 등 쟁쟁한 인물들이 당시 죽임을 당했다.
전주에서의 태종은 매우 인자한 군왕이었다. 임금을 맞이하는 예법과 절차에 하자가 발생했어도 관련자들을 꾸짖거나 벌주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일을 잘해도 상을 내리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전주에서 벗어나자마자 엄격한 군왕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귀향 도중 임금이 사용하는 말인 내구마가 경기도 탄천교에서 물에 떨어져 즉사한 사건이 생기자, 책임자(광주판관)에게 80대 장형(杖刑) 및 파면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전주에서 대권 꿈 키운 이성계
강력한 카리스마의 절대군주 태종마저 겸허하게 만든 전주는 사실상 조선의 원류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건국주 태조 이성계와 그 직계 선조들의 자취가 이곳에 오롯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기(王氣)를 느껴보는 여행 시작점으로는 이목대(전북도기념물 제16호)가 의미가 있다. 이목대는 자만벽화마을로 유명한 교동 초입에 세워진 작은 비각을 가리킨다. 이 일대가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李翰) 때부터 여러 대에 걸쳐 살던 곳이라고 한다. 이성계의 4대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도 이곳에서 태어나 살다가 관원과의 불화를 겪어 강원도, 함경도 등지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이목대 비석에는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목조대왕이 전에 살았던 터)’라는 고종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고종은 외세의 침탈로 혼란스럽던 시기인 1900년에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 정통성을 표방하기 위해 조선의 뿌리인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다.
자만벽화마을에 묘사된 조선 마지막 왕자 이우(李씚)의 모습.
태조 이성계가 ‘대풍가’를 불러 대권의 꿈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곳으로 전해지는 오목대. 이곳에서는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목대 역시 태조 이성계와 관련 있는 유적지다. 태조가 잠시 머문 곳임을 알리는 고종의 친필 비문 등 역사적 기록들이 이곳에 남아 있다.
전주의 상징인 풍남문. 전주성 문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문이다.
○백제의 궁성지와 전주한옥마을
한복 차림으로 전주한옥마을을 여유롭게 즐기는 관광객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 내 정전.
경기전이 있는 이곳에 한옥마을이 들어서게 된 것도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제가 도로를 넓히기 위해 전주성 성벽을 허물어뜨리면서 일본 상인들이 이 일대 상권까지 장악하게 됐다. 이에 전주의 뜻있는 유지들이 조선의 뿌리까지 침범해 오는 일본인들을 막고자 한옥을 짓고 마을을 건설했다고 한다.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전동성당.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로 유명하다.
한편 기린봉 자락이 뻗어 내려온 곳에 위치한 오목대와 전주한옥마을 등 주변 지역은 후백제 도읍지와 중첩되는 곳이기도 하다. 900년 견훤이 전주에 세웠던 후백제 왕도의 진산은 기린봉이었고, 견훤 시기에 쌓은 산성이 발견되기도 했다. 견훤이 머물렀던 왕궁은 아직 정확한 위치가 밝혀져 있지 않다. 분명한 건 전주가 한 왕조를 창업해낼 정도로 지기가 왕성한 도시라는 점이다.
글·사진 전주=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