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구로카와 유지 지음·안선주 옮김/296쪽·1만6000원·글항아리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꺼내든 책이다. 현대사 서술에 이르러선 한국 식민지배사와 겹치는 인상을 받았다. 러시아제국과 소련 지배를 거치며 가혹해진 탄압사는 읽을수록 안타까울 정도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에서 근무한 일본 외교관 출신이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오스트리아에 이어 18세기 러시아제국에 병합된 우크라이나는 적화(赤化)의 최대 피해자였다. 어찌 보면 소련의 심장부였던 러시아에 비해 더 큰 사회주의 폐해를 겪어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20∼1921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소련 공산당이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의 수확물을 무리하게 징발해 러시아 본토로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재였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몰려있던 도시에 비해 우크라이나 전통이 잘 보존된 농촌지역에서 민족주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시련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철권의 독재자 스탈린은 1927년 집권 후 민족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민족주의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스탈린은 1928년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다.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고 집단농장으로 보내는 조치가 이뤄지자, 절망한 농민들은 자포자기에 빠진다. 이들은 자기 소유 가축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거나 팔아 버렸다. 여기에 소련 공산당의 수확물 강제 할당과 흉년이 겹치면서 1932∼1933년 최대 6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한 대기근이 다시 벌어졌다. 러시아 중심부는 멀쩡한 채 유럽 최대 곡창지대에서만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스탈린은 기근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공산당원들에게 떠넘겨 약 10만 명이 숙청됐다. 학계에서 이 시기를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필적하는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이유다. 냉전시대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지만 여전히 전쟁 위협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동병상련의 처지 아닐까.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