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힌 사람들/이브 러플랜트 지음·이성민 옮김/448쪽·2만 원·알마
1888년 프랑스 남부의 한 시골 의사 펠릭스 레이는 한 환자에게 “뇌전증의 한 형태를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린다. 환자는 전날 스스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라내 머리가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환자는 종종 환청을 들었고,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그는 화단 내에서 그저 ‘미쳤다’고 알려졌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는 회복되는가 하면 발작을 다시 일으켰다.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실제가 아니라고 느꼈다. 우울해졌고, 어떤 때는 사람들이 자신을 독살한다고 생각해 두려워했다. 1888년 12월부터 1년 7개월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전보다 그림을 더 자주 그렸다. 이 기간에 그린 수백 점의 그림은 그가 평생 그린 전체 작품의 절반이나 된다. 그를 괴롭히던 ‘과도한 민감성’이 풍부한 표현력으로 발현된 것이다.
고흐가 겪었던 질환은 심각한 발작을 동반하는 ‘측두엽뇌전증(TLE)’이다. 이 책은 미국의 논픽션 작가인 저자가 약 10년간 TLE를 파고들며 쓴 의학 논픽션이다. 저자는 TLE 연구 선구자인 하버드대 신경과 전문의 노먼 게슈윈드의 연구를 중심으로 TLE를 설명한다. 게슈윈드는 TLE 발작을 일으키는 뇌의 흉터가 성격 변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적 능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