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뉴스1
20일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대입 재수생 77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1%가 올해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질문으로 전년도 종로학원 모의지원자 1만2884명을 추적조사한 결과와 비교해보면 올해 문이과 교차지원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월부터 재수생의 절반 정도가 문과 교차지원을 검토하는 상황이라면 고등학교 3학년은 물론 반수생까지 본격 가세할 경우 교차지원 분위기가 더 확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올해 정시모집에서 이과생들의 ‘문과 점령’은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됐던 바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인문·사회·예체능 계열 최초합격자 486명 가운데 수능 수학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은 216명(44.4%)에 달했다. 통상 수학 영역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는 학생은 이과로 확률과통계를 선택하는 학생은 문과로 분류된다.
대입 상담을 했던 진학교사들도 정시지원 대학 3곳 중 2곳에 문과로 교차지원한 중상위권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말한다. 상담했던 상위권 학생 중 40% 이상이 교차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교사도 있었다.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손을 모은 채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뉴스1
실제로 종로학원이 올해 재수생 7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년도 수능에서 수학 확률과통계를 선택한 학생 중 14.4%가 재수할 때는 미적분으로 선택과목을 변경하겠다고 응답했다. 확률과통계에서 기하로 변경하겠다는 학생은 3.4%였다.
문과생들이 이과생의 교차지원으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한 고등학교의 A진학교사는 “이런 식으로라면 통합 수능의 취지 자체가 편향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안 그래도 인문계가 점점 위축되는 상황인데 입시에서까지 피해를 본다면 자연계 선호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의 B진학교사는 “학생이 다른 과로 빠져나가면 학과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반수생이 빠져나가면 대학에 등록금 손실이 생길 것”이라며 “특히 반수는 대다수 학교 규정상 한 학기 동안 학교에 적을 두는데 이 경우 편입생으로 결원을 채울 수도 없다”고 봤다.
◇“고등학교 수학 요구수준 합의해야” “대학 차원에서 과목 제한 둬야”
전문가들은 올해와 같은 ‘문과 점령’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능 체제는 물론 대학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수준에서 수학을 어느 정도까지를 요구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통합수능 체제 하에서 수학의 비중이 커졌는데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 측에서 지원 자격 등 전형 방식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다수 대학들은 2022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자연계열에 수학 미적분·기하, 과학탐구 응시 등의 조건을 걸어 놨다. 반면 인문계열 모집단위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오히려 주요대 인문계열에서 수학 반영 비율을 높인 경우도 있었다.
한상무 수석대표는 “대학 선발 시 과목 제한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인문계열에서 사회탐구에 대한 변환 점수를 높이는 식으로 정시 전형 방식을 바꾸는 것이 제일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B교사는 “교육과정과 평가체제가 통합됐다면 대학도 그에 맞춰야 한다”며 “자연계열도 지원 조건을 두지 말거나 특정 학과에서 높은 수학 수준을 필요로 한다면 자연계열에는 과학탐구, 인문계열에는 사회탐구 응시 조건을 둬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