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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보호 여성 피살’로 스토킹처벌법 또 도마에…해외에선 어떻게

입력 | 2022-02-20 08:15:00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뉴스1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던 전 남자친구의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행 5개월째를 맞은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등 주요 나라는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 의무체포·의무기소, 위치 추적 제도로 엄격히 대응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스토킹 가해자가 접근금지 등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했을 때 과태료만 내면 돼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에 앞서 젠더폭력 정책을 마련한 주요국가들은 스토킹범죄 및 데이트폭력 등을 가정폭력 수준으로 강하게 대처하고 있다.

미국은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을 통해 연인 간 폭력뿐 아니라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 등을 여성 폭력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구제제도를 강화해왔다. 가정폭력에 적용하던 ’보호명령‘ 제도를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에도 확대 적용해 추가 폭력을 방지하고 있다.

미국은 스토킹을 범죄로 여긴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 D.C.에선 파트너 폭력에 대해 의무체포 제도를 택하고 있다. 의무체포란 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를 정확히 식별해 반드시 체포하도록 하는 제도로, 피해자에게 가해자 체포나 처벌을 원하는지 질문하면 안 된다.

또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 없이 폭력사건의 과거력, 재발의 위험성, 폭력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흉기 사용 여부, 체격 차이 등 형사사법기관에서 폭력의 본질을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임시조치(유치장 입감)나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영국은 2014년 3월부터 일명 ’클레어법‘으로 불리는 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를 시행해 연인의 폭력 전과를 공개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클레어 우드라는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다만 정보공개는 경찰과 관련 전문가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이뤄진다.

영미권에선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 출동 전 양측의 전과 기록도 열람할 수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는 현장에서 양측의 엇갈리는 진술만 듣고 판단해야 하고, 반의사불벌죄가 있으니 판단을 전적으로 피해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사법기관에서 위험성 평가, 재발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고 그 평가를 하려면 전과조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2000년 ’스토커 행위 등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일명 스토커 규제법)‘을 시행해 왔다. 1999년 10월 여대생이 전 남자친구의 살인 사주로 피살된 ’오케가와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행위가 살인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여론이 반영됐다.

가해자의 직접 접근뿐 아니라 전화나 팩스, 이메일 등을 활용한 행위도 접근금지 명령 대상이 될 수 있다. 2017년 6월에는 전면적인 법 개정이 이뤄져 스토킹 행위에 대해 경고를 거치지 않고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또 긴급 상황의 경우 긴급 명령의 사전 절차로 필요했던 ’피해자 청취‘를 사후에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친고죄였던 것도 비친고죄로 전환했다.

아울러 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영국·스페인 등은 접근금지명령 위반을 강력범죄를 예고하는 위험요인으로 보고,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등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인한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할 경우 위치 추적·감시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경남 창원중부경찰서 입구에 지난해 10월21일부터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을 알리는 홍보용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 뉴스1

이수정 교수도 “우리는 성범죄자 고위험군에만 발찌를 채우는데 외국의 경우 가정폭력사범에도 부과한다. 가해자가 접근하면 피해자 휴대폰과 경찰에 알리는 식”이라며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 처벌법을 개정해 임시조치의 한 방법으로 전자감시를 넣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인 간 폭력을 따로 분류해 ’데이트 폭력‘이란 용어로 부르기 시작한 게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자체도 미국보다 27년, 일본보다 21년 늦었다.

늦은 시기뿐 아니라 내용의 한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반의사불벌죄다. 반의사불벌죄란 스토킹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기소할 수 없고 기소한 후에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재판을 종료해야 한다. 반의사불벌죄는 독일이나 일본에는 없는 독특한 제도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고소를 당한 측에서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피해자를 계속 괴롭혀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며 “데이트 폭력·데이트 살인 범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접근금지명령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스토킹 신고가 들어와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은 가해자에게 피해자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를 명령하고 이를 어기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오윤성 교수는 “법을 강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남성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의견도 있다. 또 현재 의무체포가 과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몇 개월이 더 지나 계속해서 데이트 폭력·데이트 살인이 발생해 우리가 운용되고 있는 법 시스템으로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외국의 의무체포 제도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