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효소로 혈액형 항원 없애자 A형 혈액형 폐가 O형으로 변신 이식용 장기 만성 부족 해결 기대
토론토대 연구팀이 이식용 폐의 혈액형을 A형에서 O형으로 바꾸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유니버시티 헬스 네트워크 제공
장기를 혈액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증받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왔다. 혈액형이 다른 공여자의 장기를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O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의 장기로 바꾸는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면역거부반응 문제를 해결할 이 연구가 임상 연구에서 성공하면 만성적인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르셀로 시펠 캐나다 토론토대 외과학부 교수 팀은 인체 효소를 이용해 A형 혈액형 기증자의 장기를 O형 혈액형 장기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16일 밝혔다.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 항원에 의해 결정된다. A형 혈액은 A항원, B형은 B항원, AB형 혈액에는 두 항원이 모두 있다. O형은 항원이 없다. 항체는 A형이 B항체, B형은 A항체, O형은 두 항체를 모두 갖고 있다. AB형은 항체가 없다. 다른 혈액형끼리 수혈 받으면 항원항체 반응이 나타나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장기는 혈액형과 같은 항원과 항체를 갖는다.
연구팀이 이 효소를 A형 혈액형 기증자의 이식용 폐에 주입하자 폐 표면의 A항원이 4시간 안에 97% 제거됐다. 폐 혈액형이 A형에서 O형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 폐 이식수술을 가정해 O형 혈액형을 폐에 주입했다. 그 결과 효소를 넣어 항원을 없앤 폐는 O형 혈액형에서도 거부반응 없이 잘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효소 처리를 하지 않은 폐는 O형 혈액형에 거부반응을 보이며 괴사했다.
다른 장기도 O형으로 만들어 이식이 가능해지면 만성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O형 환자는 A형 환자 대비 폐 이식을 받기까지 평균 2배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 이식에서도 A형 환자나 B형 환자가 2, 3년 대기하는 반면 O형 환자는 4, 5년 동안 대기자 명단에 오른다. 수혈과 마찬가지로 A형이나 B형 환자는 같은 혈액형뿐 아니라 O형의 장기도 이식받을 수 있지만 O형 환자는 O형 장기만 이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왕 아이저우 토론토대 외과학부 박사후연구원은 “폐 이식이 필요한 O형 환자는 장기 제공을 기다리는 동안 사망할 위험이 20% 높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이종장기와 인공장기의 개발이 성공할 때까지 장기 부족 문제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람의 장기와 생물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장기 이식 기술은 지난달 심장 이식수술에 이어 신장을 이식하는 임상 수술이 성공하면서 눈앞에 다가왔다.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해 인공장기를 만드는 기술도 10∼15년 후에는 상용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연구팀은 혈액형을 바꾼 장기를 이식하는 첫 임상시험이 18개월 내에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