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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금메달 도둑맞은 심정? 눈 뜨고 코 베여보셨나요?”

입력 | 2022-02-21 03:00:00

2010 밴쿠버서 金 도둑맞은 김민정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2010년 밴쿠버 여자 3000m 계주 실격 판정 후 허탈해하는 김민정 선수(왼쪽)와 우리 선수들. 김민정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는 “숱한 견제와 반칙에도 불구하고 그걸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이진구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20일 끝났다. 특히 쇼트트랙에서 우리 선수들이 겪은 불이익은 온 국민이 공분했을 정도.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도 석연치 않은 실격 처리로 중국에 금메달을 빼앗긴 김민정 전 국가대표 선수(37)는 “올림픽뿐만 아니라 각종 세계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겪는 견제와 반칙, 편파 판정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수들이 특히 많이 당하는 이유라도 있나.

“제일 잘하니까. 다른 나라는 우리 정도로 당하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우리가 발 내밀기 기술로 금메달을 자꾸 따자 없던 규정을 만들어 제대로 못하게 만들까.” (어떻게 바꿨기에?) “원래는 다리를 자유롭게 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선수들이 자꾸 이 기술로 금메달을 따니까 규정을 바꿔 스케이트 날을 빙판에 붙인 채 내밀도록 했다.”

※발 내밀기는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김기훈 선수가 처음 선보였다. 이후 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에서 우리 선수들이 이 기술로 잇따라 금메달을 따자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항의를 했고, 이후 규정이 바뀌었다.

―외국 선수들도 발을 뻗으면 되지 않나.


“흔히 ‘그까짓 거 마지막 순간에 발 쭉 뻗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말 하기 힘든 기술이다. 마지막 바퀴는 체력이 완전히 극한까지 고갈된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틴다. 마지막 젖 먹던 힘을 짜내서 내밀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들어온다. 더군다나 오직 정신력으로만 버티는 상황에서 왼발로 할지, 오른발로 할지, 코너를 나오자마자 왼발부터 뻗은 뒤에 하는 게 승산이 더 있을지, 인코스로 할지, 아웃코스로 할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편파판정도 심하다던데… 밴쿠버 때 당신이 출전한 우리 여자 계주팀은 세계신기록을 세우고도 실격 처리됐다.

“눈 뜨고 코 베였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도 당시 동영상을 찾아본 적이 없다. 보면 너무 속상하니까. 기가 막힌 건… 심판이 실격 사유도 명확하게 짚지 못해 말할 때마다 달랐다.” (당시 기사마다 반칙 사유가 다른 게 그 때문인가.) “왜 실격이냐고 항의하니까 처음에는 내가 중국의 쑨린린에게 크로스트래킹(cross tracking·진로방해)을 했다고 하다가, 다시 임피딩(impeding·밀기 반칙)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중국 선수(장후이) 얼굴에서 피가 난 게 내 스케이트 날에 찍혀서라고 했다. 난 그 선수와 같이 달린 적도 없는데….”(당시 비디오를 판독한 전문가들이 반칙은 없었다고 했던데.) “오히려 쑨린린이 내 스케이트 뒷날을 쳤다. 그래서 넘어질 뻔했는데 되레 내가 반칙을 했다며 우리 팀을 실격 처리하더라.”

※한국 팀(박승희 이은별 조해리 김민정)은 4분7초07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김 선수가 반칙을 했다는 이유로 실격 처리돼 중국이 금메달을 가져갔다. 장후이의 피는 중국 선수들이 자축하는 과정에서 베인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공교롭게 심판이 2002년 솔트레이크 에서 김동성 선수를 실격 처리해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이 돌아가게 한 호주의 제임스 휴이시였는데….

“태극기 들고 세리머니를 하는데, 다른 심판들은 끝났다고 가려고 하는데 휴이시만 계속 비디오 판독기 앞에 있는 게 보였다. 좀 불안했지만 그래도 워낙 우리가 깔끔하게 잘 타서 별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휴이시가 우리 코치 박스로 가더라. 그 순간에 느낌이 ‘쎄∼’했다. ‘뭐지?’ ‘왜 가지?’ 1등인 걸 알려주려고 가는 일은 없으니까.”

※남자 1500m 결선에서 김동성 선수가 1위로 들어왔다. 그러나 휴이시는 진로방해라며 김 선수를 실격 처리했고, 이 때문에 금메달은 할리우드 액션을 한 오노에게 돌아갔다. 전명규 감독이 휴이시에게 “Are you crazy?”했더니 그는 “Yes, I‘m crazy”라고 했다고 한다.

―경기 전에 좀 걱정되지 않았나.

“정말 그렇게까지 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런데 우리 팀을 실격시키고 나니까 언론에서 얼마나 휴이시가 한국에 편파적이었는지 줄줄이 기사가 나오더라.” (그러면 안 되지만 분노한 한국 누리꾼 수사대가 휴이시의 야동 다운로드 내역까지 파헤쳤다.) “‘휴이시, 이번엔 그냥 안 넘어 간다’는 기사를 본 것 같기는 한데. 하하하.”

※휴이시는 2002년 김동성 이승재(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 2006년 최은경(토리노 겨울올림픽), 안현수(세계선수권대회), 2007년 송경택(밀라노 월드컵), 2008년 진선유(ISU 2차 월드컵), 2010년 성시백(밴쿠버 겨울올림픽) 등을 줄줄이 실격시켰다. 당시 언론에는 연일 ‘휴이시, 그는 누구인가’ ‘휴이시, 한국 싫어하나’ 등의 기사가 게재됐다.

―베이징에서도 그랬지만 쇼트트랙은 왜 제소를 해도 받아주질 않나.

2019년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동계유니버시아드에 국가대표 코치로 참가한 김민정 선수.

“쇼트트랙이…국제빙상연맹(ISU)에 제소를 하고, 뭘 해도 번복이 안 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심판 권한이 굉장히 크다. 예를 들어 명백히 나온 비디오 화면을 들고 가서 ‘봐라, 부딪힌 게 없지 않느냐’고 해도 심판이 ‘내가 본 각도에서는 부딪혔다’고 해버리면 끝이다. 황대헌 선수, 헝가리 류 사오린 선수에게 실격을 준다는 게 말이 되나.”

※남자1000m 결선에서 중국 런쯔웨이가 헝가리 류 사오린 샨도르를 두 손으로 잡아채 밀어내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사오린은 1위로 들어왔는데 심판이 실격 처리해 중국이 금, 은을 땄다. 준결선에서 황대헌, 이준서 선수가 실격 처리된 그 종목이다. 사오린은 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헝가리인인데도 당했다.

―황대헌, 이준서 선수 실격 사유인 레인변경 반칙이 심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큰 규정이라고 하던데.

“예전에는 직선 코스에 줄이 없었는데 올해부터 생겼다. 그 선을 기준으로 자기 진로에서 많이 벗어난 선수에게 레인변경 반칙을 준다. 예를 들어 누가 나를 추월하려고 하는데 내가 옆으로 넓게 벌려서 진로를 막으면 실격 처리된다. 그런데 이게 되게 애매한 게… 모두 붙어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보니 심판이 보는 각도에 따라 실제 상황과 다르게 보이기가 쉽다. 쇼트트랙은 추월이 묘미인데, 추월할 때든, 막을 때든 자기 레인에서 약간씩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누구에게 레인변경 반칙을 주려고 작정하면 추월했든(황대헌 경우), 추월을 막았든(이준서 경우) 다 줄 수 있는 거다. 항의가 들어와도 앞서 말했지만, ‘내가 볼 때는 많이 벗어났다’고 하면 끝이니까.”

―황 선수를 실격시키며 ‘레인 변경이 늦어서 신체접촉을 유도할 수 있다’고 했던데, 가능성도 반칙 사유가 되나.


“되긴… 그런 예측성 반칙이 어디 있나.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거지. 황 선수 경기 다음 날 쇼트트랙 코치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는데… 이준서처럼 앞에 있어도 실격, 황대헌처럼 뒤에서 추월해도 실격,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달려야 하냐는 말까지 나왔다. 오죽하면 동네 운동회보다 못 하다는 말이 나오겠나.”

―중국이 다른 대회에서도 반칙을 많이 하나.

“중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어떻게 반칙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많이 한다. 반칙도, 이상한 판정도 많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중국처럼 막 잡아당기거나, 미는 행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잘하는 편 아닌가? 굳이 왜 그런 반칙을….) “밴쿠버 때는 오히려 중국이 우리보다 실력이 위였다. 중국은 힘과 순발력은 좋지만 작전의 다양성은 별로 없는 편이다. 반면에 우리는 훈련도 열심히 하지만 기술과 작전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큰 대회에 굉장히 강하다. 그러다 보니 견제 심리가 강한 것 같기는 하다.”

―갈수록 견제가 심해지면 우리 선수들이 정말 힘들 것 같은데.

“그래서 제자들이 한 점의 흠도 없이 완벽하게 이기게 하려고 더 꼼꼼하고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 나같이 어처구니없게 금메달을 놓치는 선수들이 더 이상 없게. 길게 보면 중국은 참 안된 거다. 당장은 반칙과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가져가 기쁘겠지만, 그런 방법으로 이득을 봤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안 좋은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려 할 테니까. 반면에 우리는, 당장은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빌미 하나 주지 않는 완벽한 체력과 기술을 개발하려고 애를 쓸 테고. 베이징에서 보듯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괜히 세계 정상인 게 아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