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나 돌, 옷감 따위에서 일정하게 켜를 이루면서 짜인 상태나 무늬를 ‘결’이라 한다. 나뭇결대로 도끼를 내리치면 큰 장작도 수월하게 쪼갤 수 있다. 반대로 결을 역행하면 장작을 제대로 패기 어렵다. 인생도 그렇다. 결대로 살면 인생이 술술 잘 풀리고 결을 역행해서 살면 인생이 꼬인다. 어떻게 사는 것이 결대로 사는 인생인가?
주역 64괘는 변화무쌍한 삶의 파노라마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결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연못 속에서 우레가 번쩍이면서 연못의 물을 흔드는 형상을 나타낸 택뢰수(澤雷隨)괘는 우주 만물의 인과법칙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레는 사물의 변화를 촉발하는 원인이고 물이 흔들리는 건 그에 따른 물리적 결과다. 연못의 물이 흔들리면 물결이 생긴다.
택뢰수괘의 괘사와 효사는 결을 따라 살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말한다. 결대로 살기 위한 인생 수칙도 알려준다. 공자의 상전(象傳)에 나오는 그 첫 번째 수칙은 휴식과 성찰이다. 향회입연식(嚮晦入宴息).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쉰다는 뜻이다. 날이 저문다는 건 욕심에 겨워 곧고 바른길, 즉 결을 벗어났다는 의미다. 집으로 돌아가 쉰다는 건 욕심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내면을 성찰하는 행동을 뜻한다. 분수를 벗어났다 싶으면 잠시 멈춰 삶을 돌아보란 의미다.
세 번째 수칙은 개방이다. 택뢰수괘의 초구(初九) 효사는 출문교(出門交), 문을 나서 사람들과 사귀라고 말한다. 삶의 방향이 올바른지 알려면 남들과 비교해 봐야 한다. 벤처기업의 창업자들이 기업공개(IPO)를 택하는 것도 기업 운영의 결에 부합한다. 기업공개를 하지 않으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지만 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도 출문교 전략으로 정보기술(IT) 업계의 대표 주자로 거듭났다. 아마존의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론칭하며 사용자들이 아마존의 데이터베이스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공개했다.
네 번째 수칙은 소탐대실하지 말라는 것이다. 택뢰수괘의 육이(六二) 효사는 ‘계소자(係小子) 실장부(失丈夫)’라 말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소자)을 탐하다 장차 기대되는 큰 이익(장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컴퓨터 공룡 IBM은 컴퓨터에 탑재할 운영체제 1순위로 프로그래머 게리 킬들이 개발한 ‘CP/M’을 꼽았다. 하지만 킬들은 IBM이 제시하는 조건이 까다로워 계약에 응하지 않았다. 빌 게이츠는 그 틈을 파고들어 ‘Q-DOS’라는 운영체제의 라이선스를 매입해 ‘MS-DOS’로 이름을 바꾸고 IBM에 납품했다. 그리고 대박을 터뜨렸다. 킬들은 게이츠를 사기꾼이라 비난했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마지막 수칙은 결에 무조건 휩쓸리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택뢰수괘 육삼(六三) 효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계장부(係丈夫) 실소자(失小子) 수유구득(隨有求得). ‘장부를 따르고 소자를 버린다. 그 결을 따르면 얻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고 행동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게이츠는 IT의 물결이 어떤 모양으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확하게 내다보며 그 결에 맞춰 행동했다. Q-DOS의 라이선스를 사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장기 투자라 생각했다.
힘들면 욕심을 내려놓고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라. 사람들과 소통하라. 크고 작은 것을 따져보며 긴 안목으로 인생을 설계하라. 이렇게 결대로 살면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와도 능수능란한 서퍼처럼 그것을 넘을 수 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