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금융 작년 521명 떠나… 3대 보험사는 14배 늘어 397명 디지털-비대면 전환 가속화 영향… 새해 들어 신한-우리카드 82명 짐싸 “퇴직금 받아 인생 2막” 수요도 많아… 금융당국 직원도 민간이탈 급증
시중은행에 다니던 40대 A 씨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했다. 회사가 비대면·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며 조직 규모를 줄여나가자 ‘차라리 퇴직금을 많이 받을 수 있을 때 나가야겠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퇴직을 하기에는 나이가 어린 편이지만 어차피 나가야 한다면 퇴직금이라도 두둑이 주는 지금이 낫다”고 했다. A 씨는 현재 계약직으로 증권사에 재취업해 다른 업권으로 갈아탈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은행권 위주로 단행되던 희망퇴직이 최근에는 카드, 증권, 보험, 캐피털 등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KB·신한·하나금융그룹의 보험, 증권, 캐피털 분야에서 521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100명보다 5배나 많은 수치다. 특히 3대 그룹 생명·손해보험사의 희망퇴직 인원은 397명으로 2020년(28명)의 14배나 됐다. 증권 계열사에서는 지난해 90명이 짐을 싸 회사를 나갔다.
금융사들이 희망퇴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는 디지털·비대면 전환이 가속화되면서다. 은행 점포 등 영업점이 잇따라 폐쇄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업무를 자동화하다 보니 잉여 인력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폐쇄된 국내 은행 점포는 총 1507곳에 달한다. 가상자산과 빅테크 등 신규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금융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다른 길도 열리고 있다. 연봉을 더 많이 주는 정보기술(IT) 업계로 옮겨 가는 금융권 인력도 많아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IT 전문가의 경우는 구인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이라며 “은행, 증권사 IT 인력이 더 좋은 대우를 받고 게임업체, 쿠팡 등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B 씨(41) 역시 지난해 회사가 희망퇴직을 신청받자 고민 끝에 퇴직을 신청했다. 이직이나 창업 같은 특별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는 “1년간 퇴직금을 잘 굴리며 쉰 뒤 아예 금융권을 떠나 ‘인생 2막’을 설계해볼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전통적인 대형 금융사에 더해 코인업계 등으로도 직원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승진은 어려워지는데 금융회사 대비 연봉 격차가 더 벌어지자 늦기 전에 ‘명예 대신 민간행’을 택하는 이가 느는 것이다. 기성 금융권에서는 가상자산, 빅테크 등 신규 산업이 형성되며 새로운 규제가 마련될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 출신들을 앞다퉈 모셔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지난해 말 이후 사무관부터 과장까지 4명이 대형 로펌, 생명보험사, 가상자산 거래소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감독원에서도 가상자산 거래소로의 이직이 이어지고 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