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예바 사태 피해 사실상 없어 데이터 제공 등 협조 안했지만, ‘국가차원 도핑’ 징계 연말 종료 국제 반도핑시스템 허점만 드러내
중국은 서운할지 모르겠다. 자국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러시아로 시작해 러시아로 끝났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으로 전 세계 주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어 개막 3일째부터는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대표 카밀라 발리예바(16·사진)의 도핑 사건이 다른 올림픽 이슈를 모두 빨아들였다.
사실 러시아는 현재 올림픽 참가 금지국이다. 2016년 러시아도핑방지위원회(RUSADA) 산하 모스크바반도핑연구소 그리고리 롯첸코프 소장은 2014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도핑을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결국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19년 러시아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4년간 출전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내렸다. 그 대신 도핑과 관계없는 선수는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 대표팀이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라는 이름을 쓴 이유다.
○ 명목상 처벌 국가명 사용 금지도 12월이면 끝나
20일 폐회식에서는 이날 열린 크로스컨트리 50km 남자 경기 시상식이 열렸다. ROC 대표인 알렉산드르 볼슈노프가 금메달리스트 자격으로 포디엄에 오르자 러시아 국가 대신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이 흘러나왔다. 올림픽에서 러시아 국기, 국가가 사용 금지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문제는 러시아가 국가 주도 도핑 사실이 적발된 이후에도 샘플을 조작하고 WADA의 도핑 기록 데이터 접근을 차단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국가 주도로 도핑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20년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 금지 기간을 올해 12월까지로 줄인 상태다.
○ 국가 주도 도핑 폭로에도 타격감 없는 러시아
발리예바는 20일 고국 팬들의 환대 속에 귀국했다. 러시아가 도핑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단, 발리예바 사태는 국제적 반도핑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한 탓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CAS가 17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25일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도핑 검사를 받았지만 이번 올림픽 대회 기간인 7일에야 검사 결과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도핑 검사 실시 기관은 CAS 청문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근무 연구원 수가 줄어 검사 진행이 늦어졌다고 입장을 밝혔다.
CAS는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출전 선수의 도핑 여부가 제때에 검증됐어야 했다”며 “반도핑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발생한 피해를 선수가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고 발리예바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결국 발리예바는 ‘샘플 오염’이라는 구두 주장을 제외하고는 구체적 증거 자료를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도 올림픽 연기를 마칠 수 있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