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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반군 독립 승인에 西 반발…우크라 ‘외교 해결’ 물건너가나

입력 | 2022-02-22 10:13:00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 15일 동부 도네츠크 지역 합동군사 훈련에서 NLAW 대전차 무기를 발사하고 있다. 도네츠크=A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내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2개의 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승인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그간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가 이들 지역에 대한 독립을 승인할 경우 강력 대응 입장을 천명해 왔던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의 외교적 해결 여지가 더욱 줄어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회의 긴급회의 후 국영TV로 방영된 대국민담화를 통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이 통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내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의 독립을 승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크렘린궁에서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데 이어 DPR 수장 데니스 푸쉴린, LPR 수장 레오니트 파세치니크와 ‘러시아-DPR·LPR 간 우호·협력·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안’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돈바스 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한 민스크 협정을 이행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군사적 공격”으로 인해 “민간인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내 친러 분리주의자들의 안보를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은 물론 보복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들 반군 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인정한 것은 러시아가 이들 공화국을 더 이상 우크라이나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맞서 이들 공화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두 지역에 공공연하게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치명적인 군사적 충돌에 관여시키고 러시아와 미국 등 서방간 갈등을 급격히 고조시키겠다고 위협하는 푸틴 대통령의 ‘고강도 전략’이라고 짚었다.

현재 친러 반군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을 모두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그중 약 3분의 1만을 통제하고 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2개의 공화국의 실질적인 국경을 인정할 것인지, 무력으로 이들 지역을 확장하려고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은 “노골적인 국제협정 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미국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을 예상했고, 즉각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 지역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규 투자와 무역, 금융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오는 22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승인 발표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35분간 전화통화를 가진 데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및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도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과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의 결정을 “강력 규탄”하면서 향후 대응책을 논의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 서방 정상들은 모두 “우크라이나에 대한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구실을 만들고 있다”고 성토했다.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의 고강도 조치에 미국 등 서방이 강력 반발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 낮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장 푸틴 대통령이 이들 반군 공화국들에 러시아군을 파견해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한 만큼 러시아군의 돈바스 지역 진입 과정에서 자칫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오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다. 이 회담에선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 담판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두 정상간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물론 외무장관 회담 개최도 불투명한 상태가 됐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군사 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했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약속할 순 없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은 “탱크가 굴러갈 때까지 외교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며 외교적 경로에 대한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 분위기다.

이 고위당국자는 러시아군의 돈바스 지역 진군에 대해 “이전 움직임보단 더 노골적인 행동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새로운 단계는 아니다”라고 톤을 조절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반군공화국 지역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러한 조치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추가 침공할 경우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해 준비해 온 신속하고 가혹한 경제 조치들과는 별개‘라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오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사일이 날아오거나 탱크가 굴러갈 때까지 우리는 외교에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연설에서 ”러시아는 항상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지지한다“고 가능성을 남겨뒀다.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군 진입에 대한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은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워싱턴·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