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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의 사談진談]‘밈’ 타고 진화하는 이미지 대선

입력 | 2022-02-23 03:00:0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탈모 지원 공약을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설명하고 있다(위쪽 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소화제 광고를 패러디하며 지하철 정기권과 관련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각 캠프가 만든 후보들의 이런 재미있는 이미지들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송은석 사진부 기자


대선을 앞두고 ‘소리 없는 전쟁’이 있다. 골목마다 붙여진 선거 벽보에선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조용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한 장의 선거용 포스터를 제작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한다. 첫 이미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3초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벽보 한 장에 응축된 후보들의 전략은 무엇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파뿌리에서 검은 머리로의 변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선 시절 이 후보는 자연스러운 백발이었다. 흰머리는 중후하고 안정적인 지도자 느낌을 준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머리색으로 당내 친문 세력의 표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런 이 후보가 검은 머리로 염색을 했다는 건 젊은 인상을 통해 2030의 표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현 정권과 차별을 두는 효과도 있다.

윤 후보는 검사 시절부터 이마를 덮는 2 대 8 가르마로 인기 어린이 만화 속 탐정 주인공과 닮아 화제가 됐다. 강직해 보이지만 무뚝뚝한 동네 아저씨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포스터에선 3 대 7 가르마에 머리를 위로 넘겨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딱딱한 검찰총장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적잖은 변화를 시도했다. 지난 대선 때 심 후보는 야외에서 찍은 사진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현장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당의 대표 색을 최소화한 다른 유력 후보들과 달리 정의당의 상징인 노란색을 배경으로 처리했다. 지난 대선 때 두 팔을 번쩍 들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안 후보도 주류 정치인의 관록이 느껴지는 사진을 선택했다. 경제난을 해결할 진중한 최고경영자(CEO)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후보들보다 미소를 덜 머금었다는 평가도 있다. 서글서글하지만 다소 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눈썹 문신을 통해 선명하게 바꿨다.

과거에는 선거 포스터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다. 그 대신 당명과 선거 구호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TV 보급률도 낮고, 인쇄 품질도 떨어지던 시절, 실제로 대면하기 어려운 후보들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처럼 귀에 쏙쏙 박히는 문구가 더 효과적이었다. 그나마 벽보에 사용된 후보들의 사진들도 지금처럼 미소 짓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선 포스터 속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소 권위적인 모습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경직된 선거 포스터의 벽을 허문 건 군 출신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유권자를 응시한 채 이를 드러내며 웃는 사진을 사용했다. ‘보통 사람’임을 강조한 그는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대권을 잡았다. 이후부터 대선 후보들의 선거 사진은 근엄함에서 호감형의 이미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선거 포스터를 넘어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 형식으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돌고 있는 사진들이 후보들의 이미지 제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누리꾼들은 유세 현장에서 포착된 인상적인 장면을 움직이는 사진 파일인 GIF 파일로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원래 이런 밈은 주로 상대 후보들을 비방하는 용도로 사용됐는데 최근 몇몇 대선 후보들은 이 밈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기자가 최근 윤 후보의 영남 유세 현장 취재를 갔을 때다. 연설을 마친 윤 후보는 손을 흔들며 지지자들의 호응에 응답하다가 갑자기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어퍼컷 퍼포먼스였다. 이 후보도 19일 전북대 인근 유세에서 코로나19를 차버리겠다며 발차기를 선보였다.

이런 퍼포먼스는 현장 유세 분위기를 달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밈으로 만들어져 온라인 선거전의 전면에 서고 있다. 정치인의 이미지 전쟁이 선거벽보에서 이제는 밈 형태로 확장돼 유권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silver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