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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압박에 코로나 대출 4차 재연장…금융권 “대체 언제까지”

입력 | 2022-02-23 08:04:00


금융당국이 다음달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만기·이자상환 유예 조치의 4차 재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치권의 압박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잠재부실이 누적되고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가 만연해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1일 밤 참고자료를 내고 “여·야 합의에 따라 마련된 부대의견 취지와 방역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의 추가 연장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소상공인 및 방역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 예산안’이 의결·확정되자, 당국이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국회는 추경 예산안 의결시 “정부는 전 금융권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추가로 연장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내용의 부대의견”을 제시했다.

그간 금융위는 금융지원 조치의 질서있는 정상화를 위해 예정대로 ’3월 말 만기연장·상환유예 종료‘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코로나19 위기 장기화로 잠재부실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환여력이 낮아진 잠재부실 채권이 지속 누적되면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272조2000억원에 달하는 대출에 적용됐으며 이중 만기 연장이 258조2000억원, 원금 유예가 13조8000억원, 이자 유예가 2354억원이다. 지난 2년간 자영업부채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9년 말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자영업자 부채는 29.6% 늘어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율인 15%를 크게 웃돌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87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만기연장·상환유예는 3월 말 종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종료시점까지의 코로나19 방역상황, 금융권 건전성 모니터링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하지만 정치권과 중소기업계 등에서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지속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데다, 국회가 전격 재연장을 결정하면서 금융당국도 4차 연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부대의견이 나왔는데 이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다만 재연장은 정부만이 아니라 금융권과 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재연장)방향으로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연착륙 방안이나 보완 대책 등은 3월 중 나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금융사들로보터 의견을 수렴하는 등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금융감독원 등과 자영업자 경영·재무상황에 대한 미시분석을 세밀하게 진행 중”이라며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자영업자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대책도 심도있게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가 이미 결정한 이상 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앞으로의 협의 과정에서 잠재부실을 줄이고 추후 종료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질서있는 정상화를 위한 후속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4차 재연장을 하지 않을까 내부적으로 추측하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재연장 방침을 밝힐 줄은 몰랐다”며 “아직까지 금융당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시나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진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실규모를 제대로 가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자상환 유예 조치만큼은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향후 유예 조치가 종료됐을 때 그간 쌓아놓은 빚 부담이 일시에 몰려 가려졌던 부실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힌 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들도 대선이란 큰 변수가 있고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니 재연장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며 “이제 차주들이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부실이 나지 않도록 연착륙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만큼 고통분담 차원에서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렇게 이자상환까지 천년만년 미뤄주는 것이 맞는지, 이게 소상공인들에 진정 도움을 주는 일인지 시간이 갈수로 점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열린 ’소상공인 부채리스크 점검 간담회‘에서도 점진적인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재연장 시기를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자는 의견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지원 조치를 언제까지나 지속할 순 없으며, 조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상환부담 및 부실위험이 집중되지 않도록 상환시점을 분산시키는 방안, 이자유예 조치부터 정상화시키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소상공인 매출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만기연장·상환유예 추가연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단 연장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이고, 지원대상 제한 및 단계적 종료를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것도 검토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상을 대면서비스업 소상공인으로 제한하거나, 일정규모 이상 중소기업은 원금·이자유예조치를 우선 종료하는 방식 등이다.

일각에선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서 금융위가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위가 지속적인 대출 만기연장으로 금융기관들의 실질 연체율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연이은 연장으로 규모만 커져 부실 가능성만 높아졌고, 더군다나 최근 기준금리 인상으로 더욱 돈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한두 번도 아니고 4차례나 연장이 되니, 이제 차주들 사이에선 정부가 또 연장해주겠지 하면서 돈을 갚아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모럴해저드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정치권이 압박하다고 그냥 못이기는척 따라가는, 금융위가 가장 편한 방법만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