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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그냥 병력 이동”→“러 우크라 침공 맞다”…왜 입장 바꿨나

입력 | 2022-02-23 13:12:00

© News1 DB


지난 21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우크라이나 승인 없이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반군 지도자들과 맺은 협정으로 러시아군 주둔을 공식화했는데도, 미국은 잠시 머뭇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탱크 한 대만 넘어가도 침공”(2. 6.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NBC 방송 인터뷰)이라던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웬일인지 “우크라이나 동부로의 러시아 병력 이동”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며 침공(invasion)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꺼리는 모습이었다.

그런 미국이 22일(현지시간) 입장을 바꾸고 러시아의 결정을 침공으로 규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잘라내고 있다”며 “이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도 CNN에 “침공은 침공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침공인 듯 침공 같은…美 허찌른 러

러시아의 행위가 침공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전날 미국 언론을 뜨겁게 달군 문제였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전날 기자들에게 설명한 ‘침공이 아닌 이유’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교전이 계속되는 동안, “사실상 러시아 군이 그 지역에 머물러온 만큼, 동부로 군대를 보내는 게 새로울 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러면 러시아가 돈바스까지만 들어가면 침공이 아니냐’는 질문까지 나왔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행정부 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지 아닌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보도했고, 폴리티코는 “푸틴이 돈바스에 군대를 보낸다는데 백악관은 침공이란 단어를 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럽 지도자들 역시 애매한 건 마찬가지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라면서도 침공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침공할 구실을 만들고 있다”고 언급, 그 자체로는 침공이 아니란 취지를 시사했다.

작년 11월부터 바이든 대통령과 존슨 총리를 포함해 서방 여러 지도자들이 푸틴 대통령을 향해 “우크라이나 침공하면 신속하고 가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경고해온 바로 그 ‘제재’가 하루 넘겨서야 쏟아진 건 바로 이 때문이다.

© News1



◇제재 효과 고민하다 의회 등 각계 반발 직면

서방이 단어 사용에 신중했던 데에는, 침공으로 규정 시 예고했던 대러 제재를 당장 부과해야 하는데, 이 경우 러시아군이 돈바스를 넘어 더욱 광범위한 지역까지 들어가는 ‘명백한 침공’을 억지할 수단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연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우크라이나 합법 정부 승인 없이 자국 군대의 주둔 및 군사시설 구축을 공식화해버린 러시아의 행위를 침공으로 부르지 못하는 바이든 정부의 우유부단함은 곧장 의회 등 각계의 반발에 직면했다.

짐 리시 미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최고위원은 21일 밤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의 이동은 침공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푸틴은 우크라이나 주권을 계속 침해하기 위해 교묘한 속임수를 쓰면서 서방이 반응하지 않길 바라고 있는 것”이라며 러시아 은행과 개인 제재 및 노르트스트림2 중단 등의 신속 조치를 촉구했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애덤 스미스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밤 성명을 내고 “주권국가이자 독립국가인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안보에 대한 러시아의 노골적인 공격은 즉각 끝나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사태의 책임을 묻는 행동을 촉구했다.

미 공군 선임 연구원인 타이슨 웨첼 중령은 애틀랜틱카운슬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가 8년간 점령한 지역에 단순히 병력을 늘렸다고 보는 등 상황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안일한 분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일침을 날렸다.

◇2014 크림 실수 다신 없도록…추가 침공 억제에 ‘촉각’

바이든 외교안보팀의 ‘뼈아픈 과오’인 2014년 크림반도 사태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각오 역시 고민 끝에 입장을 정리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민주화 운동인 마이단 혁명이 일어나자 진압을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파병, 러시아계 및 친러 주민이 많은 남부 크림반도를 무력 점령한 상태에서 주민투표를 열고 찬성 우세로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투표 자체를 보이콧한 상황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눈 뜨고 코 베이듯’ 러시아가 호시탐탐 노리던 흑해를 낀 크림반도를 잃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 등 서방의 역할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바이든은 부통령이었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부통령 최고 보좌관이었다.

제재 효과의 약화 우려에도 침공이란 단어를 꺼내든 건 러시아가 공식화한 군대 주둔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러시아 병력이 야금야금 넘어와 현지를 실제 장악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서방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점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 병력이, 돈바스에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을 각각 선포한 친러 반군 세력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통제하지 못하는 곳에서 작전을 벌일지 여부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은 전했다. 반군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내 장악한 영토는 전체 3분의 1에 그친다.

WSJ에 따르면 지난 밤 사이에 이미 러시아 탱크 부대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 인공위성기업 맥사 테크놀로지가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0km 떨어진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 지역 군사기지에 새 야전병원이 추가 건설된 모습이 담겼고, 대포와 탱크 등 중장비를 이동시킬 수송차량 목격담도 전해진다. 러시아는 이런 이동 병력 임무를 ‘평화유지’로 부르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표면화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로,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인근 국경지대에는 러시아 지상군 전체 35만(추산) 병력 중 약 19만 병력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서방 당국은 파악해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