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사우스 코트 강당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미국은 2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 국책은행 두 곳과 자회사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을 1차 제재 대상에 올렸다. 러시아를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단시켜 돈줄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유럽연합(EU)과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 동맹·우방과 협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앞서 독일은 러시아와의 가스관 사업 노르트스트림2 중단을 발표했고, 호주와 일본도 어제 러시아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혔다.
이처럼 각국이 속속 러시아를 규탄하며 제재 대열에 동참하고 있지만 한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원론만 내놓았다. 러시아를 규탄하지도 않았고, 제재 동참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한반도에 불똥이 튈까 걱정할 뿐이다. 그러니 북한 중국 달래기에 급급하더니 러시아 눈치까지 보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소극적 태도는 무엇보다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를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한국 외교의 실종 사태는 우려스럽다. 미국이 추진하는 제재에는 자국 기술이 들어간 모든 제품의 러시아 수출 금지가 포함돼 있다. 우리 반도체와 전자제품, 자동차 수출길이 막힌다. 미국의 제재는 그것을 위반한 제3국도 제재하는 식이어서 한국이 피해갈 도리도 없다. 동참을 거부한다고 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데도 한국은 그저 침묵하고 있다.
외교적 행보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입을 닫고 주변만 살피는 것이라면 동맹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실망과 불신을 낳을 뿐이다. 정부는 늘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라고 강조하지만, 국제적 신뢰를 잃고선 한국 외교가 설 자리가 없다.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규탄은 하지만 행동이 없는 나라들’을 향해 “규탄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이 훗날 그런 통사정을 하는 처지가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