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1913∼1914년.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벌거벗은 남녀 한 쌍이 누워 있다. 이들이 누운 곳은 편안한 침대가 아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바다 같기도 하고, 밤하늘의 구름 위 같기도 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자 품에 안겨 편히 눈을 감고 잠들었다. 반면, 남자는 근심이 있는지 뜬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 인상적인 그림은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어 코코슈카의 대표작이다. 그는 불안한 선과 강렬한 색채, 과장된 이목구비와 몸짓을 사용해 모델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 자신과 그의 연인 알마다. 알마는 10대 때 이미 수십 곡을 작곡한 뛰어난 작곡가이자 재능 있는 문인이었다. 미모와 사교성도 뛰어나 여러 남성들이 청혼했지만 19세 연상의 유명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했다. 막상 결혼하게 되자 남편이 아내의 작곡 활동을 금하는 바람에 알마는 우울증을 앓았다. 결혼 생활은 9년 만에 말러의 사망으로 끝이 났다. 당시 31세였던 알마는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다시 많은 구애를 받았는데 그녀의 선택은 7세 연하의 코코슈카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열정적인 연애를 했다. 코코슈카는 그녀를 모델로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자신에게 너무 집착하는 청년 화가에게 알마는 곧 싫증을 느꼈다. ‘폭풍’으로도 불리는 이 초상화는 두 사람이 헤어지기 직전에 그려졌다.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코코슈카는 잠든 연인과 달리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바람에 요동치는 바다와 검은 태양이 화가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한다.
폭풍처럼 격한 감정은 이내 식기 쉽다. 불꽃같은 사랑도 오래가기는 힘든 법. 코코슈카는 이 그림을 통해 연인과 영원히 하나임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림이 완성된 후 알마는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이후 알마는 전도유망한 젊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재혼하지만, 코코슈카는 죽는 날까지 평생 그녀만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