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여름 패션에서는 한 가지만 기억하자. 파스텔톤이다.
추운 겨울 끝에 꽃이 피듯 올해 봄에는 파스텔톤 특유의 생기 있고 차분한 색감이 거리를 수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색감부터 안정감을 주는 버터·크림·레몬·아이보리 색까지 더욱 다채롭게 등장했다.
코로나19에 억눌렸던 소비자들에게 파스텔톤은 특별한 의미와 위로를 준다.
남서부 유럽 해변 리조트 풍경에 많이 쓰이는 파스텔톤은 휴가와 여유로움, 평온함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파스텔톤 특유의 화려한 색감이 오래전 해외에서 보냈던 즐거운 추억을 상기시키며 코로나 블루를 잠재워줄 것이다.
화사한 파스텔컬러로 ‘봄다운 봄’
코로나 시대, 色이 주는 위로 18세기에 등장한 파스텔톤은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옷에 다양한 색감을 내기 위해 비싸고 희귀한 염료를 사용할 수 있던 계층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아내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파스텔 색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은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특히 베이비 블루와 옅은 핑크를 선호했다고 한다.
올해 봄여름 시즌 런웨이에서는 파스텔톤 중에서도 블루 계열이 돋보인다. 미국의 색채연구소 팬톤은 올해의 색상으로 대담하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지는 파스텔톤인 ‘베리 페리(Very Peri)’를 선정했다. 블루와 퍼플, 레드가 조합된 느낌의 색으로, 메타버스 등이 각광받는 디지털 세계에 걸맞은 미래 지향적인 색감이다.
런웨이에 선 패션 브랜드들은 파스텔 블루를 저마다 소화해냈다. 특히 옅은 블루톤이 올해 봄여름 거리를 부드럽고 상쾌하게 가득 채울 예정이다. 릭 오웬스는 회색빛이 돌 정도로 톤 다운된 블루색 셔링 드레스로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세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밝은 세레니티 색 트렌치 재킷과 같은 톤 스트라이프 팬츠를 매치하고 붉은 스카프로 포인트를 줬다.
채도 높은 블루 색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선명한 하늘색 원피스와 쨍한 로열 블루 색 오픈토 슈즈를 매치하고 블루 체인 디테일이 들어간 가방으로 시원한 무드를 완성했다. 에르마노 피렌체는 나비 패턴이 들어간 화사한 파스텔 블루 색상의 드레스를 선보였다. 드레시한 실루엣을 허리 부분의 벨트로 강조해 캐주얼한 분위기를 낸다.
특히 파스텔 블루 색은 코로나19 이후 유행이 된 원마일 웨어(1mile wear)와 셋업 정장을 한층 화려하게 해준다. 원마일 웨어는 집에서부터 1마일(약 1.6km) 내에서 입는 편안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패션으로, 주로 느슨한 실루엣이나 니트, 스웨터 등의 소재를 사용한다. 셀린느는 옷감 전체에 반짝이는 시퀸 장식이 들어간 퍼플 톤 롱드레스를 선보였다. 몸선을 휘감으며 떨어지는 실루엣이지만 박시한 블랙 가죽 재킷을 통해 캐주얼한 멋을 살렸다.
지난해 패션계를 강타한 딱딱한 느낌의 셋업정장도 파스텔톤을 만나 로맨틱한 변신을 시도한다. 셋업 정장에도 원마일 웨어처럼 무심한 멋의 루즈핏 트렌드는 이어진다. 엉덩이를 덮어 허리선을 강조하지 않고, 일자핏 하의와 딱 붙는 크롭톱을 이너로 매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끌로에는 화사한 레몬·피치 컬러의 셋업에 블랙 톱과 샌들을 매치해 시크한 균형을 맞췄다. 셋업과 이너 모두 올 화이트인 셋업에는 레드 클러치로, 트위드 소재의 아이보리 셋업에는 재킷 하단과 바짓단의 술 장식으로 포인트를 줬다.
올해는 서로 다른 파스텔톤끼리 함께 스타일링하는 톤온톤 매치가 많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기존처럼 포인트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채도가 더 높은 컬러와 과감하게 배합해 주는 것이 대세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올해의 팬톤 컬러 중 하나인 ‘글레이셔 레이크’를 활용한 코디가 대표적. 글레이셔 레이크 색상의 시스루 이너에 같은 톤 뷔스티에를 매치하고, 밝은 하늘색의 하렘 팬츠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핑크, 블루, 퍼플을 자유자재로 매치해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성 패션뿐만 아니라 남성복에도 파스텔톤 흐름이 이어질 예정이다. 파스텔톤은 여성스러움의 대명사지만 미국 남성 프레피 패션의 단골 컬러이기도 해 양면성을 갖는다. 게다가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고 유니섹스 트렌드가 확산된 만큼 올해는 남성복 시장 역시 파스텔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