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던 한지우(김동휘)는 명문 자율형사립고에 입학한 뒤로 기를 펴지 못한다. 대치동 사교육을 통해 고3 수학까지 모두 배운 뒤 입학한 아이들과 경쟁한다는 건 버겁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우에게 대치동 사교육은 다른 세계 이야기. ‘수학포기자(수포자)’에 부진아가 된 지우에게 담임은 일반고로의 전학을 종용한다. 그런 지우가 신분을 숨긴 채 학교 경비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리학성(최민식)을 만난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학창시절 수많은 이들을 절망케 했던 수학을 소재로 다룬다.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지우의 읍소에도 곁을 주지 않던 무뚝뚝한 학성은 지우의 사연을 안 뒤 마음을 연다.
영화 속 이야기는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등 여러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최민식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굿 윌 헌팅’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학원 드라마도 학원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이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라며 “그런 걸 늘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를 만났다”라고 했다.
두 사람이 수학 수업을 하는 과학관 지하 공간은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낸다. 곳곳에 배치한 탁상용 스탠드가 내는 은은한 주황빛은 공간을 따스하고 아늑한 기운으로 채운다.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연출하기 위한 빛 활용이 돋보인다.
김동휘는 올해 27세. 그러나 인근 고등학교 학생을 데려온 듯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서울말을 쓰려 노력하는 탈북자 말투 등 세밀한 포인트까지 짚어낸 최민식의 연기 관록은 단편적인 악인 묘사 등 영화의 아쉬운 점을 상쇄한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등장한 이 ‘착한 영화’는 결과와 정답만 중시하는 세상을 사느라 지친 이들을 열심히 위로한다. 그 덕분에 다소 뻔하고 기시감 강한 설정은 관대하게 넘기게 된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