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동아일보에 색다른 어린이날 선물거리 중 하나로 소개된 집중력 향상 보조기기 엠씨스퀘어.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Q. 왜 봄비는 추적추적 내리는 걸까요. 좀 시원스레 오지 않고(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아이디 버**)
A. 아시다시피 봄이 여름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기 때문입니다. (중략) 봄은 증발량이 많지 않으며, 우선 여름의 장마의 근원이 되는 장마전선이 발달하지 않는 것도 이유입니다. (아이디 p*****)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에 올라왔던 문답이다. 아이디 p***** 님은 지식인에서 ‘영웅’ 등급이다. 정중한 문체까지, 어쩐지 신뢰가 간다. 그러나 그 아래 달린 ‘평민’ 계급 s******* 님의 ‘직구(直球)’성 답변에 더 정이 간다. ‘그럼(봄비가 많이 오면) 소풍을 못 가자나!!’
‘터미널에 내려 혼자 걷지. 바로 향하는 작업실/사람들 사이로 내려 봄비. 대전에도 내릴까 혹시’(신스 ‘봄비’ 중)
#2. 본명 신수진. 데뷔 전 신스는 대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취준생’이었다. 평소 하고 싶던 음악에 죽기 전에 제대로 한번 투신해보고파 부친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음악 하고 싶어요.’ 그 길로 집을 나왔고 결국 혈혈단신 서울로 향했다고.
‘도착했다고 전활 걸어. 알았단 말 후엔 정적 (중략) 사랑한단 말 대신 emoji(이모티콘) 보내는/내 신세 여전히/아버지 가슴에 박힌 못이지’
감정 없는 로봇처럼 디지털로 변형된 신스의 목소리. 촉촉한 멜로디 위로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저 차갑고 무뚝뚝한 음성은 되레 듣는 이의 감정을 흔든다. 마치 편지지 위 검은 활자들처럼.
#4. 한때 서울 사람에 대한 무지와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엠씨스퀘어라는 집중력 향상 학습 보조기기 같은 게 세상에 나오던 시절이다. 헤드폰처럼 쓰고 있으면 신비한 음파가 나오는데 두뇌에 알파파를 발생시켜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고 했다. 가격이 비쌌다. ‘서울 학생들은 저런 거 사서 끼고 수능 준비를 할까.’ 이런 순진한 생각에 긴장도 했더랬다.
#5. 요즘은 그 옛날 엠씨스퀘어를 사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나 음원 플랫폼만 켜면 ‘잔잔한 수면 음악’ ‘광릉 숲속에 내리는 빗소리’ ‘스타벅스 ××점 10시간 배경음’ 같은 콘텐츠가 널려 있어서다. 이런 백색소음들을 전문용어로는 앰비언트 사운드, 앰비언트 뮤직이라고도 부른다. 영상과 음악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인위적으로 찾는 여백의 콘텐츠인 셈. 삶에 빈 칸이 필요할 때마저 우리네 현대인은 무위의 명상 대신 뭐라도 재생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그러고 보면 쏴아 하고 퍼붓지 않는 미적지근한 봄비의 미학은 그 여백에 있지 않나 싶다. 추억이나 회한이 그 위로 방울방울 맺히는 이유는 그 ‘추적추적’의 자연스러운 빈칸 덕분 아닐까.
#6.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싱어송라이터 정밀아 역시 신스의 ‘봄비’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서울역에서 출발’이란 노래로 말이다.
‘근데 엄마 혹시 그날이 생각나세요?/내가 혼자 대학 시험 보러 온 날/옛날 사람 봇짐 메고 한양 가듯이/나도 그런 모양이었잖아요’
‘서울역에서 출발한 내 스무 살은/한 백 번은 변한 것 같아’(‘서울역에서 출발’)
정밀아의 노래 위로 신스의 랩을 겹쳐본다. 내 맘속 비의 스크린에 두 작품을 동시상영 한다.
‘봄비, 봄비 내렸지. 봄비/우산도 없이 맞는 봄이지’(‘봄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