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단골 책방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 주인 남자는 커다랗고 험상궂은 곰 같은 인상을 가졌는데 어쩐지 말투도 무뚝뚝해서, 나는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공연히 주눅이 들곤 했다. 하루는 책방에 그 커다란 곰 같은 편의점 주인이 왔다. 일하던 틈에 잠시 달려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예의 무뚝뚝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 좀 추천해 주세요.” 정말이지 험한 일들일랑 단숨에 해치울 것 같은 다부진 인상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남자는 까다로운 책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책방 주인이 여러 책을 권했지만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책방 단골인 나도 곁에서 거들며 같이 책을 골라주기에 이르렀다. 대부분 독자들이 좋아할 법한 판타지와 공상과학(SF) 소설들을 추천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 어렵진 않지만 생각해 볼 만한 고전요”라고.
그럼 이 책 어때요? 나는 ‘어린 왕자’를 내밀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러 번 읽은 책인데요. 읽을 때마다 좋더라고요.” 책방 주인도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번역본이에요. 소장하려고 팔지 않은 책이지만, 꼭 맞는 주인을 만났다면 보내줘야죠.”
며칠 뒤 편의점에 들렀다. 남자는 카운터에 앉아 ‘어린 왕자’를 읽고 있었다. 그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무뚝뚝하고 험상궂다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묵묵하고 예의 바른 곰 같은 얼굴로 그가 눈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세상에는 의외의 사람이 많다.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달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겉모습에 으레 그런 사람일 거라 단정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에 책 읽는 곰을 본다면 곰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할 사람과, 곰이 책을 읽는단 말이야? 따져 물을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어떤 눈으로 사람을 보아야 할까.
잘 보니 깨끗한 유리창과 가지런한 매대마다 주인의 살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소행성 B612 같은 편의점을 나섰다. “비밀을 가르쳐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의 말이 나에게로 향한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