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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러 수출대금 못 받나” 문의 쇄도… 공급망도 재점검 나서

입력 | 2022-02-25 03:00:00

[러, 우크라 침공]러 침공, 한국경제 영향은
러시아에 수출 41%가 자동차-부품…작년 38만대 판매 23% 점유 현대車
서방 러 경제 제재 수위 예의주시…일부는 ‘무역 차단 상황’에도 대비
유학생-주재원 송금 차질 가능성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외환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전일 대비 70.73포인트(2.60%) 하락한 2,648.80을, 원-달러 환율이 8.80원 오른 1202.40원을 나타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주 바이어가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돈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직 못 받았습니다. 이체가 가능하긴 한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24일 KOTRA에는 중소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정부는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데다 한국이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할 경우 산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제재가 강화되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도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 “제재 대상 늘어 수출 차단되나”


이날 국내 기업들은 제재를 받는 금융기관이 늘어 러시아 수출이 차단될까 봐 촉각을 곤두세웠다. 상당수 종합상사들은 제재 대상인 러시아 회사와 앞으로 제재 가능성이 높은 기업 명단을 만드는 등 대응에 나섰다.

러시아에서 지난해 38만 대를 판매하며 23%를 점유한 현대자동차그룹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자동차 생산 공장, 현대모비스 모듈 공장이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면 현대차 등 국내 업체들의 현지 판매 목표량을 하향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해 기준 국내 수출의 약 1.6%, 수입의 2.8% 비중을 차지하는 10위 교역대상국이다. 자동차와 부품이 전체 러시아 수출의 40.6%를 차지한다.

미국이 반도체 등에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FDPR)’을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자 기업들은 더 긴장하고 있다. FDPR가 적용되면 한국 기업도 미국 기술과 부품이 들어간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할 수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 장기화돼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계속되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생산이 위축돼 공급망 쇼크가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에서 주재원을 철수한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공급망 차질 가능성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 물가와 수출 물가 상승률 간의 격차가 커져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관세청에 따르면 1월 무역수지는 48억9000만 달러 적자로, 지난해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적자였다.


○ 제재 강해지면 러시아 유학생·기업 송금도 차질


지금으로선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한국 금융 거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제재로 미국 금융회사 등은 러시아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 군사은행 PSB 등과 거래가 금지됐다. 하지만 국내 은행을 통한 해당 은행과의 거래는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SWIFT)망에서 러시아가 퇴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한다. SWIFT망은 국제 금융 거래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결제망으로, 국내 기업도 러시아와의 수출입 대금 대부분을 이 망으로 주고받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SWIFT망에서 러시아가 퇴출되면 러시아와의 수출입 대금 결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한인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에 대한 송금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국내 주요 시중은행을 통해 러시아 유학생, 주재원에게 송금된 돈은 624만7438달러(약 75억 원)였다.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