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범(33)은 정지훈(40)과 한 몸이 되려고 노력했다. 22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고스트 닥터’에서 빙의하는 캐릭터를 맡아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촬영이 없을 때도 정지훈을 계속 관찰했다. 걸음걸이부터 서 있을 때 모습, 말투, 제스처까지 몰래 보며 따라했다. 1인2역이 아니라 ‘2인1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촬영하는 7~8개월 동안 지훈 형과 거의 매일 만났다.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함께 했다”며 “가족보다 얼굴을 많이 마주했다”고 돌아봤다.
이 드라마는 배경도 실력도 극과 극인 두 의사가 몸을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범은 ‘금수저’에 사명감 없는 레지던트 ‘고승탁’을 맡았다. 신들린 의술을 지닌 흉부의과 전문의 ‘차영민’(정지훈)에 빙의했다. 정지훈이 코미디를 잘해 소통이 잘됐고,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둘이 만든 캐릭터라서 더 재미있었다”고 하는 이유다.
“빙의된 승탁은 겉모습이 나고, 영민 형이 들어와서 만든 캐릭터지만 1인2역이 아니라 2인1역이라고 생각했다. 승탁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을 때 구부정하고, 손을 닿는 것도 극도로 예민해 웅크려있다. 차영민에 빙의됐을 때는 의사 가운을 제치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도 피고 자신감이 가득 차있다. 걸음걸이는 디즈니 만화 캐릭터를 참고해 따라했다. 사람들이 얘기할 때 쉬는 부분도 다른데, 지훈 형이 어디를 띄어서 말하는지 보고 연기했다.”
전작 ‘로스쿨’(2021)은 법정물, 고스트닥터는 의학물에 판타지 소재까지 섞여 힘든 점도 많았을 터다. “둘 다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며 “법률 용어는 한자가 많고, 의학 용어는 영어가 많다. 두 작품 모두 100%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연기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최대한 용어를 이해하고 대사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고스트닥터는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가벼운 매력이 있다”고 짚었다. 승탁처럼 누군가 몸에 들어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할 법한데, “앞으로 빙의 (소재 작품은) 안 하기로 했다.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는데, 장르적 특성상 기존 드라마보다 촬영 분량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 예능에서 ‘뿅’ 하면 사라졌다가 ‘뿅’ 하면 나타나지 않았느냐. 실제 드라마로 찍은 것 같다. 처음엔 민망하고, 스태프들이 날 보면서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진지함을 놓치는 순간 삼류코미디 될 것 같았다. 빙의해 차영민이 됐다가 다시 승탁이 되는 부분에서도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연기했다.”
고스트닥터는 1회 4.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 16회는 8%로 막을 내렸다. 물론 시청률도 눈에 보이는 지표이기에 중요하지만, “영향을 받거나 일희일비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촬영할 때 시민들이 ‘우와~ 고스트닥터다’ ‘앞으로 어떻게 돼요?’라고 반응 할 때 더 표면적으로 (인기가) 와 닿았다. 어린 친구들이 초면에 다가와서 말을 걸고 사인도 받아가서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이런 기분을 느껴봤다”고 덧붙였다.
김범은 2006년 KBS 2TV ‘서바이벌 스타오디션’으로 데뷔했다. 다음 해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주목 받았다. 이후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 ‘불의 여신 정이’(2013) ‘미세스캅2’(2016) ‘구미호뎐’(2020) 등에 출연했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약 15년 만에 코믹 연기를 선보여 반가워하는 이들이 많다. “시트콤에서 한 코미디보다 만화같은 느낌이 많았다. 오랜만에 해서 재미있었다”며 “내가 가진 밝고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코미디 작품도 해보고 싶다”고 바랐다.
“많은 자리에서 난 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승탁을 연기하면서 내 안에 있던 동적이고 밝은 부분을 찾았다”며 “평상시 웃지 않고 우울한 건 아닌데, 항상 차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승탁이를 연기하면서 장난을 치고 ‘항상 웃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좋았다. ‘나도 이런 면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아직도 김범을 거침없이 하이킥 속 밝고 엉뚱한 인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항상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려고 하지만, 스스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일까?’ 고민한다. 데뷔한 지 16년이 흘렀는데 풀지 못한 고민도 있다. “10년 넘게 연기하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작품 고민, 부담감은 누구나 있기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아직까지 ‘작품 끝난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한다. 이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푸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답을 못했다. 이후로도 계속 답을 찾아봤는데 못 찾았다. 지금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