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본 없이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수천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 문은상 전 신라젠 대표에게 2심 재판부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배임 인정 액수 등이 줄며, 벌금은 350억원을 선고했던 1심보다 대폭 줄어든 10억원만 부과됐다.
25일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승련·엄상필·심담)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문 전 대표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 벌금 10억원을 선고했다. 1심과 징역형량은 같지만 벌금 액수는 350억원에서 무려 35분의1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다.
1심은 문 전 대표가 얻은 부당이득과 배임 액수를 350억원으로 봤지만, 2심은 부당이득은 ‘액수 불상’이며 배임 액수만 10억5000만원으로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자금 돌리기 방식 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신라젠의 성공가능성·상장가능성, 경영진의 신용 등과 관련해 투자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며 “부정한 기교”로 규정했다.
재판부는 문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곽병학 전 감사에게는 징역 3년과 벌금 10억원, 이용한 전 대표에게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범행에 연루된 페이퍼컴퍼니 실사주 조모씨는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선고받았다. 신라젠 창업주이자 특허대금 관련사 대표 황태호씨에게는 이날 무죄가 선고됐다.
문 전 대표를 제외한 다른 피고인들도 이날 전반적으로 형량이 줄었다.
재판부는 ▲신라젠이 개발하던 항암제인 ‘펙사벡’의 성공가능성을 피고인들이 확신해 상당한 투자위험을 감수했던 점 ▲상장심사 때 이미 신주인수권부사채의 발행구조가 공개됐음에도 상장이 이뤄졌던 점 ▲투자자들 손해는 펙사벡 임상 실패로 인한 것인데 피고인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검찰은 문 전 대표 등이 페이퍼컴퍼니 역할을 한 크레스트파트너를 활용해 350억원 상당의 신주인수권을 인수해 신라젠 지분율을 높였다고 본다. 이후 기관투자자에 투자 자금을 받아 신라젠 상장 이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했다. 이들에게는 2013년 4월께 신라젠이 청산하기로 한 별도 법인의 특허권을 양수하며 대금을 부풀려 지급하는 방식의 29억3000만원대 배임 혐의도 적용됐다.
아울러 문 전 대표 등은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받을 수 없는 지위에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며 자신들의 몫도 포함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해당 혐의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
신라젠 사건은 전·현직 임원들이 악재성 미공개정보를 이용, 주식 거래를 했다거나 정·관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이 됐다. 대대적인 수사 등을 거치며 신라젠 주식 거래는 1년8개월 간 정지됐고, 지난달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후 6개월의 개선기간이 부여된 상태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미공개정보 이용 등 다른 자본시장법 위반행위로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양형 요소로 고려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