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우크라이나인 5명이 손팻말을 들고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손팻말에는 ‘전쟁을 멈춰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금이라도 우크라이나에 돌아갈 수 있다면 바로 군에 자원하겠어요.”
우크라이나인 알레나 빗스코 씨(26)는 고국이 러시아에 침공당해 수도 키예프 함락이 임박했다고 알려진 2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용가로 지난해 여름 방한한 빗스코 씨는 러시아 침공 후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고국에 있는 아버지는 얼마 전 군에 자원입대했다. 친구들도 하나 둘씩 자원입대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고 한다.
빗스코 씨는 “내 부모님과 친구들의 목숨이 위험한데 나는 여기서 무력함만 느끼고 있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가족들과 텔레그램,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간신히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시차가 7시간인 탓에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휴대전화를 손에 붙든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라고 했다. 어쩌다 연락이 되더라도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린다”, “사람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한국에 온지 6년째인 직장인 율리아 혼차렌코 씨(29)는 “오늘은 간신히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지만 내일도 다시 연락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올레나 쉐겔(41)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대화 중 걸려온 부모님의 안부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쉐겔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고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연설을 통해 역사왜곡 행위까지 일삼고 있다”며 “각국에 흩어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푸틴 대통령의 역사왜곡을 반박할 책임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인과 결혼해 7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테티아나 구라 씨(29)도 “어제(24일) 새벽 5시쯤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며 “대비가 어려운 새벽에 기습한 건 명백한 침략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국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20년째 한국에 살며 초등학교에서 관악부 지휘를 맡고 있는 콘스탄틴 마트비엔코 씨(49)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언제든 한국에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구라 씨는 “인터넷 기사에 아직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왜 싸우는 거야?’라는 댓글이 달린다”며 “러시아의 일방적인 침략 행위를 함께 규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는 강한 국가이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민들의 의지도 강하다”며 “한국에 있는 우리 역시 끝까지 고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