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사회부 차장
지역 언론인 출신 A 씨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방의회 의원에 당선된 그는 3선에 의장까지 지낸 뒤 지방자치단체장 출마를 고민했다. 하지만 현역 단체장이 오랜 기간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 온 터라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고, 출마를 포기했다. A 씨는 자신의 정치 경력을 더 높이 쌓아 올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A 씨가 아직 꿈을 포기하기엔 이르다. 지방선거에 나가지 않더라도 지자체장이 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응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장을 지방의회가 선출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간선제가 도입되고 A 씨가 동료 의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확보한다면 그의 꿈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최근 행안부는 ‘지자체 기관 구성 다양화 방안’이란 정책을 추진하며 특별법을 만들고 있다. 주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자체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도다. 행안부는 3개의 안을 만들어 지자체 의견 수렴에도 나섰다.
두 번째 안은 지방의회가 의원 중 지자체장을 뽑는 방식이다. 행안부는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이 융합한 영국과 비슷하다”고 했다. 마지막 안은 지자체장을 직선제로 뽑되 지자체장의 권한을 지방의회로 분산시키는 형태다. 3안을 제외한 1, 2안은 간선제가 기반이다. 지자체장 선출 방식을 바꾸려는 지자체는 주민투표를 통해 셋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겠다는 게 행안부의 구상이다.
행안부는 “지방자치법에 법률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13일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4조는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임 방법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의 기관 구성 형태를 달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2020년 여야는 32년 만에 처음 지방자치법을 전면 개정하며 이 조항을 넣었다. 규모와 특성이 제각각인 만큼 지자체장 선출 방식도 주민이 스스로 정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행안부 측은 “법률로 정하라고 했는데, 법률이 없으니 정부가 만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행안부 설명이 일부 이해는 된다. 자치권 확대라는 취지도 좋은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간선제가 도입되면 지방자치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흔들릴 수 있다. 특정 정당이 지방 권력을 독점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시기도 문제다. 행안부는 “6월 지방선거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추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곧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치러진다. 특별법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새 정부와 다음 지자체장들이 논의해 정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