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 英 “퇴출” 獨 “나중 위해 아껴두자”… 러 압박할 핵심 제재 조치 빠져 “가스값 더 뛸라” 에너지 금수도 제외… 항공우주 등 러 주요산업 수출통제 EU, 푸틴의 유럽내 자산 동결
“그것(SWIFT 결제망 퇴출)은 언제나 선택지에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유럽 일부 국가가 (시행을) 원하는 입장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공개한 ‘러시아 2차 제재안’ 중 러시아를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시키는 방안이 빠진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제재에는 러시아산 에너지의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도 없었다. 폭주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압할 결정적 한 방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공개적으로 “독일 등 일부 유럽연합(EU) 국가의 반대로 SWIFT 결제망 퇴출 방안이 제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유럽의 대러시아 제재 공동 전선에서 적전 분열이 발생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다만 EU는 25일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유럽 내 자산을 동결했다. 외교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금지 제재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SWIFT 퇴출 제재 ‘양면성’에 적전 분열
SWIFT는 북한 이란 등을 제외한 세계 200여 개국의 금융사 약 1만1000곳이 가입한 국제 금융 전산망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 결제와 주문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퇴출되면 기업은 수출 대금을 못 받고 해당 국가는 국제 금융 체계에서 사실상 단절된다. 전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 또한 “러시아의 SWIFT 결제망 퇴출 제재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러시아의 퇴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나중을 위해 아껴두자”며 반대했다. EU 일부 국가 또한 독일과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러시아를 국제 금융 체계에서 배제하면 러시아 기업의 수출에만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방 또한 러시아의 원유를 비롯한 자원을 수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빌려준 돈이 많은 서방 주요국 금융기관 또한 빚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 ‘에너지 금수, 자칫 푸틴 도울 수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금수(禁輸) 조치도 빠졌다. 경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의 비중이 큰 러시아를 생각하면 이 조치는 러시아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EU의 높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유럽에서 쓰는 천연가스의 40%는 러시아산이다. 러시아가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너지 제재가 자칫 러시아를 돕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 또한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높은 에너지 가격을 감안할 때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는 것은 가격을 올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끊으면 유럽 에너지 가격이 3배로 오를 것”이라고 비아냥댄 것도 이를 인식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