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우크라-폴란드 국경지역 르포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2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서부와 인접한 폴란드 남동부 메디카 국경 검문소에서 만난 30대 우크라이나 주부 올가 씨는 생면부지의 기자를 만나자마자 “탈출한 것은 다행이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폴란드에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메디카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프에 살던 그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탈출했다. 이날 검문소는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대피한 사람과 남겨진 가족이 걱정돼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양쪽에서 모두 몰려들면서 입출국 수속 절차에만 5∼7시간이 걸렸다. 검문소 앞에 늘어선 차량 행렬 또한 최소 3km에 달했다.
폴란드 국경경비대 대원은 입국 심사 현장을 보기 위해 검문소 내부로 들어가려는 기자를 강하게 제지했다. 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통제가 어렵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7시간째 국경 서성인 엄마 “곧 따라온다던 아들, 소식이 없어”
“대피못한 사람들 지하실 등 숨어… 러시아군이 집마다 수색 소문도”
“벌써부터 곳곳서 식량부족 호소”… 국경도시 숙박시설 모두 만실
폴란드정부 “수용장소 세울 것”… EU “우크라인 지원대책 마련”
대피 韓교민 “설마했는데 전쟁”
검문소 빠져나오는 피란민들 25일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지대에 설치된 메디카 국경 검문소에서 폴란드로 입국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검문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침공 당시 러시아군 진격의 주요 통로가 됐던 북동부 하리코프에서 대피한 베르키나 씨(20)는 공습 순간을 ‘악몽’이라고 전했다. 그는 “24일 새벽 5시부터 집 주변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뒤집어진 것 같아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러시아군이 수색에 나섰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타국으로 대피하지 못한 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지하실 등에 숨거나 산간오지로 갔다”고 했다.
○ “우크라는 이미 식량 부족”
프셰미실 중앙역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촌으로 탈바꿈했다. 침대가 설치되고 배급이 이뤄지면서 우크라이나 피란민 소녀가 간이침대에 앉아 배식을 받고 있다.
우크라군, 키예프서 방어태세 2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군인과 군용차들이 수도 키예프로 통하는 다리를 막고 러시아군의 진입에 대비한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키예프=AP 뉴시스
○ 한국 교민도 목숨 걸고 국경 넘어
한국 교민 7명도 목숨을 걸고 폴란드에 왔다. 코르초바 국경검문소에서 만난 김도순 씨는 키예프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는 “설마 했는데 진짜 전쟁이 났다. 자동차에 가족 5명이 탑승해 600km 이상을 달렸다”며 “검문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차량 대기 줄로 인근 도로가 꽉 막혔다”고 전했다.현재 우크라이나에는 67명의 교민이 남아 있다. 이 중 11명은 현재 루마니아 국경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서 한국 정부는 16일 리비프와 프셰미실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했고 교민의 육로 대피를 돕고 있다.
이 난리통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키예프에서 살다 3년 전 돈을 벌기 위해 프셰미실에 왔다는 이반 씨(37)는 “집에 만삭 아내와 3세 아들이 있다. 러시아군이 무섭지만 가족을 위해 무조건 집에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 후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