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에서 진행된 2020년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에서 이승윤씨(66)가 갈아엎어진 자신의 양파밭을 바라보고 있다. 2022.2.23/뉴스1 © News1
트럭을 몰고 온 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원들은 싣고 온 예초기에 시동을 걸고 무릎 높이까지 자란 양파 잎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예초기를 둘러맨 이들이 잎을 잘라내자 뒤따라오던 이들은 겨우내 양파들을 지켜줬던 반투명한 비닐들을 땅에서 뜯어냈다. 날리는 흙먼지 속에 연초록빛 양파의 윗동이 드러났다. 연하게 양파 썬 냄새가 났다.
“울화통이 터집니다. 우리가 애지중지하고 키운 양파를 갈아엎는다는 것은 우리 농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난 23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에서 진행된 2020년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에서 이승윤씨(66)가 직접 트랙터에 올라 자신의 밭을 직접 갈아엎고 있다.2022.2.23/뉴스1 © News1
양파밭의 주인인 이승윤씨(66)도 절뚝거리며 트랙터에 올랐다. 이씨는 짧게 ‘원래 발이 좀 불편하다’고만 했다. 손수 가꿔온 양파밭을 직접 갈아엎은 심정을 묻자 그는 “자식이 죽은 것하고 똑같아. 자식하고 똑같아요.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을 아실 거야…정말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이씨는 40년째 양파 길러왔지만 제 손으로 밭을 갈아엎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양파는 수확 시기별로 ‘조생종’과 ‘만생종’으로 나뉜다. 해가 길지 않을 때 낮은 온도에서도 잘 자라는 종을 조생종이라 하고 해가 길고 온도가 높아야 크기가 커지는 것을 만생종이라고 한다. 파종 시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확 시기는 조생이 3월 중순에서 5월 상순까지, 만생은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까지로 갈린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양파는 지난해 수확해 저장해둔 만생종 양파다.
거금도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남해안 지역에서 가장 먼저 조생종 햇양파가 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자란 거금도 조생종 양파는 매운맛이 강하지 않고 달곰해 인기가 있다. 묵은 양파만 거래되는 시장에 햇양파를 가장 먼저 낼 수 있어 시장에서 대우도 좋았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양파 가격이 폭락하면서 3월 중순부터 출하될 예정인 조생종 양파를 기르는 농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양파 농가의 농민들은 현지에서 판매하는 저장양파 가격은 도매가보다도 적다고 했다.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현재 농민들이 양파를 싣고 공판장으로 가면 운송비가 더 들기 때문에 창고에 저장만 해두고 있고 업자들이 창고를 찾아와 값을 제시하고 양파를 사간다”라며 이때 제시되는 가격이 1㎏에 150원 정도라고 했다.
더불어 강 위원장은 창고에 저장된 양파가 남아나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시장에 가져가는 물량의 대부분 ‘하(下)품’으로 평가를 받는다며 상(上) 등급을 받는 양파의 수는 극히 적다고 했다. 실제 이씨는 “직접 가락동 시장에 가봤는데 가격이 1㎏당 250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가격이면 작업비도 안 나온다”라며 3월 중순 출하 시점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23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에서 진행된 2020년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이 예초기로 잎이 잘려진 양파들 위로 걸어가고 있다. 2022.2.23/뉴스1 © News1
농식품부는 양파 재고가 과잉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오는 3월10일부터 4월30일까지 양파 출하를 연기하는 농가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양파를 출하하지 않고 창고에 봉인하는 농가에 대해 1㎏당 100원의 지원금을 우선 지원하고 5월1일 이후 거래 가격이 1㎏당 400원 미만으로 하락하면 차액을 최대 100원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즉 농가가 5월까지 양파를 저장하다가 1㎏에 300원에 판매하면 200원씩을 보전 받아 1㎏당 500원에 판매할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를 위해 설정한 예산은 40억원이다.
이에 양파생산자협회 소속 농민들은 24일 제주도에서도 1000평 정도의 양파밭을 갈아엎었다. 문희철 양파생산자협회 제주지부 사무처장은 “작년 여름부터 보관해 온 만생종 양파는 5월이 되면 이미 썩어 날 텐데 그 수량을 계산하면 지원비를 받으나 마나”라며 “정부가 5월이 넘어가면 가격이 안정화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다면 정부가 지금 싼 가격에 양파를 사서 5월 이후에 팔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25일 기준 양파 1㎏의 평균 소매가격은 1998원이다. 이날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대형매장에서도 양파가 100g당 193원에 팔리고 있었다. 양파 농가들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유통비 부담을 이해한다면서도 ‘농민은 150원에 출하하는데 소비자는 2000원을 주고 사먹는 것은 불공정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흥=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