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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업 매각하며 돈 거의 못벌어… 도서관에 6개월 숨어지냈죠”[Question & Change]

입력 | 2022-02-27 12:33:00





동아일보는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Question & Change’를 신문 지면에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가가 걸어온 길을 한정된 지면에 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대화 내용을 추가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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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24/112031438/1

박형진 대표

3차원(3D) 프린팅 안경 브랜드 ‘브리즘’의 서울시청점 매장에 들어서면 여느 안경점과는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장 한 쪽에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열십자(十) 모양의 기계가 있다. 바로 3D 스캐너다.

직원 안내에 따라 스캐너 앞에 서자 기계 중심부를 비롯해 열십자 방향으로 달려있는 카메라가 기자의 얼굴을 3초간 스캔했다. 이어 30초 뒤 카메라 바로 아래에 놓인 태블릿PC 화면에 3D 스캐닝된 기자 얼굴이 나타났고, ‘결과보기’ 버튼을 누르자 얼굴 너비와 눈동자 사이 너비, 콧등 높이 등 18개 항목의 측정결과가 나왔다. 이에 맞는 안경 사이즈와 모델도 추천됐다.

브리즘은 3D 프린팅 기술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안경을 제작한다. 브리즘 운영사 ㈜콥틱의 박형진(48)·성우석(43) 대표는 이 아이디어로 창업하기 위해 1년 넘게 3D 안경 공부 모임을 했다고 한다. 안경과 제조업에 대한 질문을 갖고 창업에 뛰어든 두 대표의 창업기(記)를 동아일보가 들어봤다. 우선 박 대표 이야기다.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48)

3D 스캐너를 체험하는 동아일보 기자.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동업이라는 게 쉽지 않을텐데. 두 분은 잘 맞나? 다퉜던 적은 없나.

일로 엮이지 않았으면 안 친해졌을 것 같다(웃음). 관심사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싸운 적이 없다. 평생 안 싸우고 살았다는 부부가 있던데, 가만 보면 이런 관계라면 그게 가능하겠구나 싶다. 의견이 다른 경우는 이슈마다 너무 많다. 하지만 성 대표와 역할 구분이 확실하고, ‘저 분야는 저 사람이 전문가다’라고 인정한다.

또 내가 반응하는 지점과 성 대표가 반응하는 지점이 다르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인 반면 성 대표는 차분하다보니 짧게 짧게 섭섭할 수는 있었겠지만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성대표는 이미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상태에서 40대 이후에 만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나는 예전에 사업할 때는 ‘사업의 중심은 나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에 목적을 갖고 사람을 선택했다. 그렇다보니 뜻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끌고 갔고, 문제가 생겼던 경험이 있었다.

사업이라는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만났기에 처음에는 ‘사업을 같이하자’라는 말은 안 했다. 좋은 아이템을 갖고 만났지만 사업이라는 건 시기가 있고, 기술 수준의 성장과 시장성에 대한 확신이 없던 상태여서 1년간 매주 수요일에 만나 스터디를 했다.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나보다.

대학 졸업 후 P&G코리아에서 마케팅을 하다가 디즈니코리아에서 ‘비즈니스 플래너’라는 직함으로 2년간 서울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중국 상해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고민 중 일본 여행을 하다가 봤던 안경점이 생각났다. ‘안경 소비자들이 안경을 구매할 때 잘 맞지 않는 문제 등으로 고충을 겪는데, 왜 일본 안경점은 잘 되지’ 라는 질문을 갖게 됐다. 디즈니 안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알로(ALO)’라는 이름으로 안경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알로’가 설립 후 꽤 알려졌는데.

알로는 2006년에 설립해 2012년에 매각했다. 순조로운 매각이 아니었고, 엑싯하면서 거의 창업자인 나는 정작 돈을 벌지 못했다. 당시 업(業)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던 상태에서 ‘내가 마케팅을 한 사람인데 저거보단 잘하겠다’라는 과도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하다보니 3~4년간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헤맸다.

요즘 같은 스타트업 지원 생태계가 있고, 기관들이 관심을 가졌다면 좋은 자금을 받아서 잘 성장시켰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금을 개인들에게 의존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이해관계 충돌 등의 문제가 생겼다.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잘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준비도 안 돼 있었다. 내부 관리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밖으로 확장을 하는 데에 몰두했던 것도 실패 요인 중 하나다. 알로는 내게 매우 아픈 스토리다.

―‘알로’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유능한 스타트업 대표나 기업을 일군 사람 중에서는 다양한 역량을 골고루 갖춘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로를 계기로 나라는 사람을 가만히 봤더니 한쪽으로 치우쳐있더라. 그걸 자각하지 못했었다.

―매각 후에는 뭘 했나.

‘알로’로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갈데가 없어서 모교인 연세대 도서관에서 6개월을 숨어 지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3개월은 ‘출근한다’고 말하고 도서관으로 갔다.

아내가 그 시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난 후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아내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많이 힘들었겠네’라는 한 마디만 했다. 아직도 그 순간이 고맙고 기억에 남는다.

―퇴사가 쉽지 않은데 용기의 근원은 어디서 나왔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업이 직장생활보다 더 힘들거나 덜 힘든 문제는 아니다. 이보다는 각자 라이프스타일과 기질에 따라 이 길이 더 편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사업은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이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뒤에서 누군가 관리한다는 느낌 때문에 큰 조직에 있을 때 더 힘들었다.

―창업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업이라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 진정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창조의 영역’인 것 같다. 사업에 대해서 보통 ‘내가 아이템이 없으니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라고 많이 말하는데, 아이템과 아이디어는 마치 정자와 같다. 수억 마리가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상황, 돈, 조직이라는 난자를 만나야 수정된다. 수정됐다고 해서 아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착상이 되고,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게 스타트업이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다고 해서 끝나는것도 아니다. 사업의 과정이 이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살면서 이런 과정을 해보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 같다. 결과가 잘되면 제일 좋겠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즐겁다.

브리즘 안경.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CES 2022에는 왜 가게 됐나.

지난해 온라인으로 열린 CES에 참여했었는데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다. 전시회라는게 아무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이뤄지는 만남이 중요한건데, 온라인은 그런 게 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둔 상황에서 CES는 가장 좋은 창구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오프라인으로 열렸는데,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라 가기 전에는 걱정이 컸다. 콥틱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CES에서 서울관에 부스를 설치했는데, 제일 안쪽에 위치해있어 흥행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울관의 공간 기획을 잘 해 밖에서 봤을 때 들어가고싶게끔 만들었고, 사람들도 많이 보러왔다. 게다가 안경은 인구의 절반이 관심을 갖는 분야고, 방문객이 콥틱 부스에서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보니 콥틱 부스 자체가 흥행에 성공했다.

―CES 참석으로 미국 시장에 대한 확신은 생겼나?

미국은 안경이 비싸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찾기 힘들다. 다인종 사회인데 반해 안경 시장은 보통 백인 얼굴에 맞춰져있다보니 소비자들의 불만도 많다. CES 2022 전시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안경을 구매하고싶다는 문의도 꽤 있었고, 실리콘밸리 베이스의 벤처투자자(VC)가 투자하고싶다는 경우도 있었다.

―콥틱 내부 분위기가 궁금하다.

‘대표님’과 같은 직급 호칭을 쓰지 않고 닉네임을 부른다. 나의 경우 직원들이 ‘젠마’라고 부르고, 성 대표는 ‘윌’이라 칭한다. 팀장 중에 40대가 한 명 더 있긴 한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예전에 20대 직원들이 일을 할 때 ‘박 대표님께서 성 대표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라고 호칭을 쓰다가 시간이 다 가더라. 그래서 호칭을 붙이지 말자고 정했다.

―직원은 어떤 기준으로 뽑나.

콥틱 직원들은 다양하다. 안경 디자이너의 경우, 조용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가 일하고 있다. 반면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은 파이팅이 넘치는 스타일이고, 브랜딩을 맡은 직원은 아티스트 출신이다.

나는 팀플레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넓은 시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작은 것에 목을 매거나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고객 경험은 여러 가지 요소가 연결돼 완성되는데,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안경 시장은 8%씩 성장중인데 반해 한국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것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콥틱의 경쟁력은?

‘맞춤형 안경’이라는 개념은 옛날부터 소규모로 안경을 만드는 장인들 사이에서 있긴 했다. 하지만 편안함이 아니라 개성을 위한 맞춤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한국에서 착용감에 초점을 맞춘 안경은 브리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안경산업의 미래는.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내에 스마트폰이 안경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수많은 IT기업, 광학기업이 여기에 엄청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경에 칩과 배터리가 들어가면 안경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안경 착용감에 대한 이슈도 더 커질 것이다.

―앞으로의 꿈은.

사업적으로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외형이 얼마가 되는지보다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고 ‘이 기업을 통해 내 삶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로, 단기적으로는 좋은 팀과 함께 과정을 즐겁게 이어가는 것이 목표다.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2002~2004년 P&G 코리아 마케팅 본부 △2005~2006년 월트디즈니코리아 디즈니랜드 개발 담당 △2006~2012년 ALO 대표이사 △2014년~현재 어반딜라이트 대표이사 △2017년~현재 콥틱 대표이사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