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 시간) 오후 1시 폴란드 동남부 국경 마을 코르초바. 인구 약 600명의 코르초바는 마을 중앙 노란색 성당과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지녀 평화롭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날 만난 주민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전쟁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며 불안해했다. 러시아군 포화가 리비우 등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까지 확대되면서 국경을 맞댄 폴란드 쪽 마을과 도시에도 전쟁 공포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 평화롭던 폴란드 국경마을까지 번진 전쟁 공포
이날 외부에서 군 트럭들을 타고 속속 코르초바에 도착한 군인들은 경찰과 함께 경비태세에 들어갔다. 마을 중심 소방서 앞에는 야전 작전상황실을 방불케 하는 주황색 텐트가 처졌다. 한 폴란드 병사는 텐트로 접근하려는 기자를 막아서며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이송되고 있다”며 “소방서 건물에는 난민을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르초바에서 국경을 넘어 약 7㎞를 가면 2차대전 당시 폴란드 땅이던 우크라이나 크라코베츠 마을이다. 이곳에서 수천 명이 나치 독일에 학살됐다. 코르초바 주민 코왈스키 씨는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한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 시작됐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폴란드까지 위협하면 3차대전으로 확산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 “폴란드 미군기지, 푸틴에겐 눈엣가시”
불안감은 사재기로 이어졌다. 이날 야로스와프 일대 주유소마다 차량이 10~20대씩 길게 줄을 섰다. 우크라이나가 장악되면 폴란드도 무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피용 휘발유를 채우러 온 것이다. 20대인 야코페 씨는 “폴란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어서 러시아가 침공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니 걱정이 된다”고 했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동의 없이 1997년 5월 전까지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는 추가적인 병력과 무기를 배치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에서 나토군이 군사 활동을 금지하고, 중·단거리 미사일도 배치하지 말 것을 서방에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의 가장 큰 눈엣가시는 폴란드에 설치될 미군 미사일 기지”라고 보도했다. 올해 가동 예정인 이 미사일 기지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불과 1300여 ㎞ 떨어져 있다. 가제타브보르차 등 폴란드 언론은 “미사일 기지는 서방과 러시아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전했다.
전쟁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폴란드인은 ‘러시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서 유럽외교위원회(ECFR)의 9일 설문조사에서 폴란드인의 65%는 ‘러시아에 맞서 싸우겠다’고 답했다.
코르초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