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토론에선 고성이 난무했다. 제리 브라운 후보(왼쪽)가 빌 클린턴 후보(오른쪽)의 부인 힐러리의 불법 자금 의혹을 제기하자 클린턴 후보는 “내 아내를 거론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며 흥분했다. 미 의회방송 시스팬(C-SPAN) 캡처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대선 후보 TV 토론은 정책 대결의 장(場)이 돼야 하지만 감정싸움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3·9대선을 앞두고 최근 열린 TV 토론에서 거친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대선 토론 역사가 긴 미국에서도 살벌한 충돌 장면이 종종 연출됩니다.
△“Will you just shut up, man? It‘s hard to get any word in with this clown.”
2020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첫 번째 TV 토론은 ‘최악(worst)의 대선 토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닙니다. 트럼프 후보가 마이크를 전세 낸 듯 얘기를 멈추지 않자 바이든 후보는 폭발했습니다. “입 좀 다물어, 이 광대(clown)랑은 얘기를 못 하겠다니까.” 상대가 계속 말을 이어가면 끊고 들어갈 타이밍을 찾기가 힘들죠. 그런 기회를 잡는 것을 ‘get a word in’이라고 합니다.
선거에서 호감도(likability)는 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2008년 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유권자들은 당신보다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오바마 후보가 “힐러리, 당신 정도면 호감형이야”라며 끼어들었습니다. 힐러리 후보를 도와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상당히 깔보는 발언이었습니다. ‘enough(충분한)’는 ‘많다’가 아닌 ‘필요한 정도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관객석에서 오바마 후보에게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상대에 대한 험담보다 가식적인 칭찬이 더 비판을 받기 마련이죠.
△“You ought to be ashamed of yourself for jumping on my wife.”
1992년 민주당 경선 토론에서 빌 클린턴 후보와 제리 브라운 후보는 난타전을 벌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브라운 후보는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 후보의 부인 힐러리의 로펌으로 불법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클린턴 후보는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 아내를 들먹거리다니 창피한 줄 알아라”며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 둘은 경선 과정 내내 서로 상대방을 헐뜯는 ‘진흙탕’ 싸움을 벌였습니다. ‘ashame’은 언제나 수동형으로 쓰는 동사입니다. ‘볼 낯이 없다(be ashamed of)’는 뜻입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