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우크라 시민, 맨몸으로 탱크 막고 화염병 제조…13만명 민병대 자원

입력 | 2022-02-28 03:00:00

[러, 우크라 침공] 국방장관 “수제무기로 대항하라”
‘화염병 제조법’ 방송 뉴스로 전파…시민에 1만8000개 무기 나눠줘
前대통령-‘미스 우크라’도 총들고…러에 맞서 속속 방어전선 합류
‘도로표지판’ 없애 러 작전교란…폭탄 설치뒤 자폭 택한 병사도




화염병 제조… 총 든 ‘미스 우크라이나’ 2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드네프르시에서 교사 변호사 주부 등 시민들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나흘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결사항전의 태세로 러시아군에 맞서고 있다.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탱크맨’을 연상시키듯 맨몸으로 러시아군 탱크를 막아서고, 시민들은 화염병을 만들고, 칼이나 망치를 들고서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24일 침공 후 곧 수도 키예프를 함락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게릴라전을 동반한 우크라이나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화염병, 망치, 칼 들고 결사항전


2015년 ‘미스 우크라이나’로 선발됐던 아나스타시야 렌나는 22일 인스타그램에 총을 든 사진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건들지 말라”고 올렸다. BBC·인스타그램 캡처

27일(현지 시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몰로토프 칵테일’로 불리는 화염병을 만드는 영상이 잇달아 올라왔다. 몰로토프 칵테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핀란드를 침공한 소련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외무인민위원이 “핀란드에 빵을 공수하는 것”이라고 침공을 정당화하자 핀란드인들이 “몰로토프에게 보내는 칵테일”이라며 소련 전차에 화염병을 던진 것에서 비롯됐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시민들에게 수제 무기를 만들어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화염병을 만드는 방법이 방송 뉴스를 통해 전파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민들에게 소총 등 무기를 나눠줘 26일까지 우크라이나 전역에 1만8000개의 무기가 풀렸다고 한다.

시민이 러시아군 탱크 등 군용 차량을 맨몸으로 막아선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CNN은 한 남성이 맨몸으로 탱크에 올라가 매달려 저지하다 바닥으로 떨어진 뒤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려 막아서는 장면이 담긴 1분짜리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고 26일 전했다. CNN은 키예프 북동부 지역에서 찍힌 영상이라며 시민들이 자전거를 던져 러시아군 탱크를 저지하려 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25일 영국 가디언은 “러시아군 차량을 막으려는 우크라이나 남성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이 남성이) 톈안먼 광장의 ‘탱크맨’에 비유되고 있다”고 전했다. 30초 분량의 해당 영상을 보면 탱크 등이 줄지어 도로를 지나던 도중 한 남성이 행렬 앞에 나타나 차량 앞을 막아섰다.

키예프 외곽에서는 시민들이 검문소를 세우고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검문소에는 총으로 무장한 시민뿐만 아니라 칼이나 망치를 들고 경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봉제공장 근로자들은 전투용 모래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헌혈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해외에서 귀국한 지원병을 포함해 침공 전부터 조직되어온 민병대 규모가 13만 명에 이른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정규군뿐만 아니라 민병대의 전투 참여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본보 기자가 폴란드 국경에서 만난 20대 우크라이나 남성 로만 씨는 “침공 소식에 당황해 국경을 넘어오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서 입대해 러시아군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저명인사들도 저항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2014∼2019년 대통령에 재임한 후 반역 혐의로 해외에 있다가 지난달 귀국한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25일 소총을 메고 미 CNN과 인터뷰를 했다. 2015년 미스 우크라이나였던 아나스타시야 렌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총을 든 사진과 함께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군대에 입대했다”고 밝혔다. 키예프 시의회 의원 야리나 아리에바(21)는 신랑(24)과 결혼식을 한 직후 국토방위군에 함께 입대했다.


○ 러 작전 교란 위해 도로표지판 없애

우크라이나 도로청은 러시아군의 작전을 교란하기 위해 “도로표지판을 없애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도로청은 “러시아군은 지리를 잘 모른다. 그들이 지옥에 가도록 하자”며 지방정부 등에 표지판 제거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러시아 기갑부대의 진군을 늦추기 위해 자폭을 택한 우크라이나 장병도 주목받고 있다. 25일 우크라이나군은 해병대 공병인 비탈리 샤쿤 볼로디미로비치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본토를 연결하는 다리 해체 작전에 투입됐다가 숨졌다고 밝혔다. 작전에 자원한 볼로디미로비치는 다리에 지뢰 설치를 완수했지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시간이 부족하자 부대에 복귀가 어렵겠다고 연락한 뒤 자폭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