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왼쪽)와 정호연이 27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의 바커 행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장에서 함께 사진 찍고 있다. 정호연과 이정재는 이날 ‘오징어 게임으로 각각 최우수 여우 주연상과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2022.02.28. [샌타모니카=AP/뉴시스]
“오오오 세상에…”
30년차 관록의 배우 이정재가 신인배우처럼 얼어붙었다. 표정은 굳었다가 풀어지길 반복했다.
27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 현장. TV드라마 부문 남자연기상 수상자로 ‘오징어게임’의 이정재가 호명됐다. 이정재는 입이 떡 벌어졌다.
1995년 SAG상 시상식이 시작된 이래 비영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연기상을 수상한 건 사상 처음.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가 올해 1월 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골든글로브에서 수상한 첫 한국 배우가 된 데 이어 SAG상까지 ‘오징어게임’ 출연 배우가 수상하며 한국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
국내 시상식에선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여온 이정재는 이날 무대에 올라 방송 진행용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등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너무 큰 일이 저한테 벌어졌다”라고 입을 열었다. 슈트 상의 안주머니에서 감사 인사를 할 명단을 적어온 쪽지를 꺼낸 뒤 “뭐 예 뭐…많이 써왔는데 다 읽지를 못하겠다”라며 종이를 다시 넣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오징어게임을 사랑해주신 세계 관객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며 수상 소감을 마쳤다.
이정재와 경쟁한 후보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당시 같은 부문에서 이정재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석세션 시즌3’의 제레미 스트롱을 포함해 같은 드라마의 브라이언 콕스 등 쟁쟁한 세계적 스타들이었다.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TV드라마 부문 여자연기상 수상자로 ‘오징어게임’의 정호연이 지목된 것. ‘오징어게임’이 시상식을 휩쓰는 분위기였다. 정호연은 이름이 불린 직후 어리둥절해하며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제친 배우는 ‘더 모닝 쇼’의 제니퍼 애니스톤, ‘더 모닝 쇼’의 리즈 위더스푼 등 스타들의 스타로 손꼽히는 배우들이었다.
그는 무대에 올라 “여기 계신 많은 배우분들을 TV에서 스크린에서 보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라며 울먹였다. “이 자리에 와있다는 것 자체가 진심으로 영광이다”라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관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호연의 수상 소감에 이날 영화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시카 차스테인(‘디 아이즈 오브 타미 페이’)이 객석에서 눈물을 삼키는 모습도 포착됐다.
‘오징어게임’이 후보에 올랐던 시상식 최고상인 TV드라마 부문 ‘앙상블연기상’은 ‘석세션 시즌3’에 돌아갔다. 이 상은 최고의 캐스팅과 연기 조합을 보여준 작품에 수여된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이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 최초로 영화 부문 앙상블상인 최고의 캐스팅상을 수상했다.
이날 ‘오징어게임’팀은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TV 시리즈 부문 ‘스턴트앙상블’ 수상자로 선정되며 ‘오징어게임’이 후보에 오른 4개 부문 중 다관왕에 오를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상은 최고의 액션 연기를 선보인 팀에게 수여된다. ‘오징어게임’이 제친 작품들은 디즈니플러스의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 등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팀이 참여한 작품이었다.
‘오징어게임’은 3관왕을 차지하며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 됐다. 외신도 이같은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이번 수상은 ‘석세션’의 브라이언 콕스와 제리미 스트롱 등을 제친 결과”라고 보도했다.
SAG상은 영화배우, 스턴트맨 등 약 16만 명이 가입된 미국 최대의 배우조합으로 영화와 TV에서 활약 중인 배우들을 대상으로 매년 시상식을 진행한다. 배우들이 직접 수상자를 선정하는 만큼 의미가 크다. 지난해에는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이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배우 최초로 이 시상식 영화 부문 수상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