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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홍규덕]러 우크라 침공,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다

입력 | 2022-03-01 03:00:00

러,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흔든 뒤 공격
北, 바이든 무력 반격 없다는 점 주목할 것
동맹 철저히 하고, 여론·사이버전 대비해야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에 이어 추가 병력을 보내면서 이번 사태가 2022년 최대의 국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가 항전 의지를 높이고 있지만 향후 상황은 불투명하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섣부른 군사적 불개입 선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국가들의 의지 부족이 이번 사태를 키우는 촉매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서방의 대러 억제 실패다.

한국 정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교민 안전대책을 세우고,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유 수입 세계 5위인 한국의 입장에서 사태의 장기화는 미래 성장 동력을 잠재울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다.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 강화는 물론 호주, 카타르 등 에너지 강국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확대해야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하이브리드 전쟁’과 ‘회색지대 전략’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러시아는 침공 전 각종 흑색선전과 여론조작,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각종 사이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를 흔들며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했다. 상대가 군사적 행동을 하기에는 모호하게 접경 지역 훈련을 핑계 삼아 군대를 전진 배치시키는 회색지대 전략도 썼다. 그러다 군사력을 직접 쓰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단번에 뒤집었다. 기존의 군사적인 고정관념을 역이용한 것이다.

우크라 사태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다. 우리와 인접한 중국과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대응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바이든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제2의 아프가니스탄을 만들 여유가 없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함락에 이어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국제질서의 변경을 시도하는 국가들의 도전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우크라 사태에서 어떤 부문에 주목할 것인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발동하고, 폴란드와 독일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고, 아파치 헬기 부대를 신속 파병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눈여겨볼 것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군사적 기습 점거를 무력으로 반격하거나, 퇴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상대방 영토를 기습 점거한 후, 군사적 압박을 풀어주는 대신 더 많은 양보를 미국에 강요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료될 수 있다.

물론 한반도 상황은 동유럽과는 다르다. 그러나 우크라 사태는 미래의 국방혁신을 준비하는 차기 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평화만을 강조했던 상대가 언제든지 무력을 선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이 상응하는 군사적 개입을 주저할 경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이에 힘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동맹 관리와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기습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상쇄전력을 키워야 한다.

셋째, 하이브리드전의 핵심은 국론 분열이다.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가 국민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여론전, 심리전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넷째, 디지털 기반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이버 해킹에 대비해야 한다. 반도체와 같은 주력 산업이나 지하철, 원전과 같은 국가 주요 시설들에 대한 보안 강화가 절실하다. 군과 국가정보원, 정부 부처,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을 연계하는 융합보안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이를 관리할 컨트롤 타워의 구축도 필요하다. 특히 신기술 분야와 공급망 관리를 위한 동맹 간 협력이 미일 수준으로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F-35A와 같은 최첨단 장비도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방호 역량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마지막으로 모병제 도입과 부대 감축이 미칠 부정적 결과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우크라이나 군 개혁은 전투력 손실로 이어졌다. NATO 편입과 미국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오판이었다.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도 하이브리드 전쟁과 회색지대 전략은 언제나 소환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의 명언을 되새길 때다.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힘을 통한 평화만이 답이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