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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서 심한 反中정서… “中을 위협적 경쟁상대로 인식”[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2-03-01 03:00:00

심상찮은 국내 ‘反中 정서’
사드-코로나로 악화된 감정… 올림픽 편파판정에 수면위로
최근 친러행보도 비호감 키워… 삼국지 등 익숙한 세대와 달리
20대는 中문화 친숙도 낮아… 커뮤니티선 中혐오 표현 난무



한국 쇼트트랙 대표 황대헌(오른쪽)이 지난달 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남자 1000m 줄견선에서 중국 선수 2명을 추월하는 모습. 이날 심판진은 이 장면에서 황대헌이 반칙을 했다며 실격 판정을 내렸다. 뉴시스


《국내 반중(反中) 정서가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9일 부산 남구에서는 30대 남성이 20대 남성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적과는 관련이 없는 단순 충돌이었지만 이를 보도한 기사에는 중국을 비난하거나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을 담은 댓글이 상당수 달렸다. 사건 피해자가 중국인 유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등에서 벌어진 편파 판정 논란을 언급한 글도 적지 않았다. 상당 수위에 올라선 국내 반중 정서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중국과 중국인을 향해 사용된 인종주의에 가까운 혐오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은 한국인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 악화된 한국인의 대중 인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심해지는 혐오 표현


최근 베이징 겨울올림픽 편파 판정이나 김치, 한복 기원 시비는 반중 정서가 수면으로 떠오른 계기일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근래 반중 정서는 2016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심화됐다고 할 수 있다. 동북공정과 미세먼지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던 차에 ‘코로나19 중국 기원설’ 등이 퍼지면서 중국에 대한 감정이 더욱 나빠진 것이다.

중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온 한국인 장모 씨(33)는 “중국인들은 (자국 중심적) 중화사상을 갖고 있어 ‘소국’이 자기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식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최모 씨(29)는 “미세먼지 때문에 중국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편파 판정 논란까지 벌어지니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신기욱 교수 연구팀이 올 1월 한국인 10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6.5점(100점 만점)으로 동맹 미국(69.1점)은 물론이고 식민 지배와 역사 왜곡 논란 등으로 감정의 골이 깊은 일본(30.7점)보다도 낮았다.

중국이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반대하며 친러 행보를 보이는 것도 국내 반중 정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중국은 평소 미국을 겨냥해 약소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비판해 왔지만, 러시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이중적 태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팀은 “(한국인의 낮은 중국 호감도는) 중국발 미세먼지와 황사,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 등이 원인”이라면서 “중국의 문화 제국주의와 반(反)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 반중 정서, 젊은층에서 강해

최근 반중 정서는 2030세대를 비롯한 젊은층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리서치가 올 1월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18∼29세가 16.6점(100점 만점)으로 가장 낮았고, 30대(20.1점)가 뒤를 이었다. 반면 50대(33.3점)와 60세 이상(32.7점)은 평균(27.0점)을 넘어 비교적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젊은층을 자주 접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혐오 표현을 마주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한 중국인 유학생은 “얼마 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중국인은 깨끗하지 않다’는 취지로 말하기에 중국인이 아닌 척했다”며 “거리에서 중국어로 얘기하다가 주변에서 ‘×깨’라고 비하하는 말을 들은 적이 적지 않다”고 했다.

젊은층에서 비교적 반중 정서가 심한 것을 두고 2010년대 들어 중국의 정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본격적으로 ‘굴기(굴起)’하는 모습을 청소년기부터 접한 것과도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 규모나 국민 소득 수준이 지금 같지 않았던 중국의 모습을 기억하는 윗세대보다 특히 더 중국을 위협적 대상으로 느낀다는 분석이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봤는데,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등을 겪으며 경쟁과 갈등 상대로 인식하게 됐다”며 “문화적으로도 젊은층은 삼국지나 홍콩 영화 등이 익숙한 이전 세대에 비해 중국 문화에 대한 친숙도가 낮다”고 했다.

○ 반한 정서 확산에 재중 한국인 불안

반대로 중국에서는 반한(反韓) 정서가 우려되는 수준이다.

최근 중국의 반한 정서가 촉발된 것은 2016년 7월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하고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에선 “한국도 중국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깊숙이 파고들었다. 교민들이 택시를 타고 가던 중 한국말을 한다고 운전사가 내리게 했다거나, 식당에 갔다가 쫓겨났다는 사연이 쏟아졌다. 한류 스타 공연 불허와 동영상 사이트의 한류 콘텐츠 업데이트 금지, 한국 단체관광 금지 등 당시 내려진 ‘한한령(限韓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교민 사회에선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내에서 더 높아진 반한 감정에 대해 우려가 큰 상황이다. 아직까지 반한 감정으로 인한 사건이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불꽃만 생겨도 폭발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베이징에서 14년간 생활한 권모 씨(54)는 “한중 사이에 김치 기원 논란이 있었을 당시 베이징의 한 중국 식당에서 우리 김치를 중국 이름인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르지 말라고 요구했다가 중국 종업원과 싸울 뻔했다”고 했다.

○ 정치권 부추김 자제해야

주변국의 잘못된 행동에 거부감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편견을 바탕으로 한 혐오의 확산은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노린 정치권 일각에서 잇달아 불붙은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을 내놓는 것을 두고도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갈등을 빚으면 결국 양국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정치인들은 당장 국민의 분노에 편승하는 발언을 내놓을 게 아니라 양국 관계를 고려해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도 혐오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한중 관계 악화에 따른 다양한 영향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건우 기자 woo@donga.com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