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美, 대러 수출통제 압박에… 한국, 러 제재 한발 늦은 동참

입력 | 2022-03-01 03:00:00

정부 “대러 전략물자 수출 차단… 국제금융망 배제도 동참”
대러 수출통제 새 조치 발표한 美… 제재 적극 동참국엔 규제 면제 약속
한국은 제외, 러 수출절차 복잡해져… 주한 러대사, 제재 방침에 “깊은 유감”



“우크라 사업 차질 상담하세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KOTRA 우크라이나 비즈니스 애로 상담센터에서 수출전문위원이 기업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미국 및 서방의 제재가 가시화되자 국내 기업들이 향후 영향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을 차단하기로 했다.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동참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리 정부가 대(對)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미국이 새로운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 국가를 정했지만 한국은 여기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뒷북 제재’란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는 28일 정부의 수출통제 허가 심사를 강화해 대러 전략물자 수출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전략물자 품목의 수출을 사실상 승인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제재를 하겠다는 것. 비전략물자와 관련해선 미국이 독자적 수출통제 품목으로 정한 반도체 정보통신 센서 등 57개 품목에 대해 관계 부처들이 조치 가능한 사항을 검토해 확정하기로 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이러한 57개 품목에 대해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새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이 새 조치를 발표할 때 앞서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에 대해선 FDPR 면제를 약속했지만 한국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 FDPR가 적용되면 기업들은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산 기술 등을 활용할 경우 러시아 수출 시 미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우리 기업의 피해 예방을 위해 FDPR 적용 예외 확보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드레이 쿨리크 주한 러시아 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정부의 제재 방침과 관련해 “깊은 유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불쾌함을 표시했다.




美, 57개 비전략물자에 수출통제… ‘자체 러 제재안’ EU-日 등은 면제
‘면제 제외’ 韓 대러 제재안 내놓아… “금융망 배제 동참-전략물자 금수”
주한 러대사 “한-러 관계 바뀔 것… 남북러 3자 협력에 전혀 도움 안돼”





정부가 28일 구체적인 대(對)러시아 수출 제재 방안을 내놓은 것은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으로 고강도 수출·금융 제재안 등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만 더 이상 모호한 태도로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동맹인 한국에 대해 제재 동참에 소극적인 것을 두고 최근 불편한 감정을 내비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선 향후 미국의 제재 요청 등에 동참해 나갈 방침이다.

이날 우리 정부의 제재안 발표에 대해 안드레이 쿨리크 주한 러시아 대사는 “한-러 관계 발전 추세가 (나쁜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며 “남-북-러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전략물자 수출 차단…스위프트 배제 동참도
외교부는 28일 ‘전략물자 수출 차단’, ‘비전략물자 수출 통제 조치 검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러시아 배제 동참’ 등 대러 제재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제재 방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대러 수출통제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방침을 밝힌 지 나흘 만이다.

정부는 우선 전략물자 수출 차단과 관련해선 이른바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서 정한 전략물자 품목들을 사실상 수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는 원자력공급국그룹(NSG), 바세나르체제,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 등이 있다.

비전략물자에 대해선 일부 품목을 지정해 대러 수출을 차단하기로 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품목을 확정하진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관계 부처 간 아직 합의도 되지 않은 상태”라며 “미국 등 동맹국들의 제재 방침 등을 보며 품목과 방식 등은 계속 확정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제 금융 거래망인 스위프트에서 러시아를 배제시키는 데 정부가 이번에 동참 의사를 밝힌 것도 의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위프트에서 퇴출되면 은행 송금이 전방위로 막힌다. ‘금융 핵무기’로 불리는 스위프트 퇴출 제재에 한국이 공개적으로 동참 의사를 밝힌 자체가 러시아에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부는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퇴출시키는 제재가 본격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수출입대금 결제와 현지 주재원, 유학생들의 송금 중단 우려 등도 커지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 중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스위프트 배제에 동참하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만큼 리스크 점검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 美, 제재 동참 메시지로 압박
정부의 이번 제재 발표는 바이든 행정부의 연속 ‘대러 제재 폭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독일, 프랑스 등까지 끈질기게 설득해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배제시킨 것을 보고 ‘더 이상 우리도 소극적으로 나설 상황이 아니다’라고 느꼈다”고 토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 정부에 최근 제재 동참 메시지도 몇 차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미 상무부가 새로 발표한 대러 수출통제 조치와 관련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를 얻어내지 못한 것도 이번에 서둘러 제재 동참을 발표한 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57개 비전략물자 품목을 통제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본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등 32개 국가에만 1차로 FDPR 적용을 면제해 줬다. 이미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러 제재를 적용하고 있다고 판단한 국가들이다. 한국은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FDPR 면제국에서 제외되면서 당장 국내 기업들의 부담은 커지게 됐다. 미국산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면 러시아로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제재 조치 발표에 쿨리크 대사는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내비쳤다. 그는 “한국이 압력에 굴복해서 제재에 동참한다면 양자 관계의 발전 추세가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 제재는 한국과 북한, 러시아가 참여하는 3자 경제 프로젝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해외직접생산품규칙
(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제3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미국산 기술,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하여 이를 다른 국가에 수출할 때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칙.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