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보자. 환경과 동물을 좋아하는 17세 소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소녀가 스스로를 남녀 성별 구별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로 규정하고, 길거리 문화를 좋아한다면. 당장 주변에서 찾기는 조금 어려워지겠지만 Z세대(1995~2009년 출생)라면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동물원 대신 아프리카의 대자연에서 동물들과 만나고, 디자이너와 협업해 세계 4대 패션쇼에 데뷔했다면…. 고개가 갸우뚱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존재하는 공간이 클라우드(가상서버)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일 것이다. 바로 인공지능(AI) 휴먼 ‘틸다(Tilda)’다.
개발의 첫 단계는 AI 휴먼이 나아갈 목표를 찾는 것이었다. LG AI 연구원은 트렌드에 밝은 젊은 직원들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6개월이 흐른 뒤 그들이 가져온 10분 남짓한 동영상에는 AI 휴먼이 나아갈 미래가 담겨있었다. 결혼식이나 아이의 돌잔치처럼 소중한 순간을 담은 동영상을 AI 휴먼의 감성으로 재편집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인간과 대화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스케치, 채색 등의 과정을 거쳐 그림을 완성해 가는 식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LG AI 연구원의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포함한 기술을 탑재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정하는 과정이었다. 이화영 상무는 이 과정을 “세상에 울림을 주는 방식을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AI 연구원은 신발 제조사 등 패션 브랜드 등과 만나 논의했으나 결국 그리디어스와 협업해 뉴욕 패션위크에 데뷔하는 방법이 정해졌다.
틸다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로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보컬 트레이닝’을 진행 중이다. 조만간 틸다가 그린 ‘그래피티(담벼락에 스프레이나 페인트로 그리는 낙서 예술)’도 선보일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문을 받았을 때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도 준비 중이고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 춤까지도 창조할 수 있도록 학습 중이다. LG AI 연구원은 향후 누구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완성도가 높아진 틸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