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트리트]〈8〉 서초구 서리풀 악기거리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악기거리’의 모습. 바이올린, 첼로 등 다양한 악기의 제작, 수리, 판매가 이뤄지는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악기상점 밀집 지역이다. 악기거리에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 등도 열린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인근 골목.
현악기로 추정되는 클래식 악기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며 행인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평범한 주택가 뒷골목이었지만 거리 곳곳에 악기를 판매·수리하는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벽에는 다양한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일부 공방에는 직접 악기를 만드는 장인(匠人)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클래식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거리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 2000년대 이후 문화·예술인 모여
서초구 ‘서리풀 악기거리’는 서울의 클래식 악기 메카로 통한다. 2018년 ‘서초음악문화지구’로 지정된 뒤 음악과 관련된 점포만 180여 곳이 모여 있다. 이곳에 머무는 서너 시간 동안에도 커다란 악기 가방을 멘 이들 십수 명과 마주쳤다.70m 정도 되는 지하 거리 전시장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 2018년 문을 열었는데 전시 기회가 많지 않은 청년 예술가의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지금도 주말이면 하루 100명 이상 찾는 숨은 명소다. 한 달가량 전시 후 새 작품으로 교체돼 질릴 틈이 없다. 서초구 관계자는 “건널목이 생긴 후 거의 방치되던 지하보도를 시민 문화공간으로 꾸민 것”이라며 “다양한 신진 청년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길 위로 나와 더 걷다 보면 피아노 건반 모양의 장식과 그림들이 악기거리의 시작을 알린다. 날이 추운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이날 거리공연은 없었지만 쇼윈도를 장식한 바이올린, 첼로 등이 눈에 들어왔다. 점포 대부분이 현악기를 취급했지만 관악기를 파는 곳도 가끔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동네 골목이었던 이곳에 악기상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1988년 예술의전당 개관 이후부터다. 예술의전당이 음악·예술인들의 구심점이 되면서,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이 추가로 들어서면서 차츰 예술의 거리로 바뀌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바이올린 활을 만들고 있다는 이상희 씨는 “예술의전당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2000년 정도부터 하나둘 악기상이 생겼다”며 “지금은 한국의 대표 악기거리가 됐다. 악기 소리와 분위기가 좋아 이곳으로 이사를 온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 악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가만 악기거리를 찾는 게 아니다. 사실 이곳은 시민들의 ‘열린 문화공간’에 더 가깝다. 곳곳에 있는 소공연장에서 청년예술인들의 콘서트가 열리고 겨울을 빼고는 길거리 공연도 많다. 예약만 하면 17∼18세기 만들어진 고악기를 둘러보고 악기 제작 현장도 견학할 수 있다. 해마다 서초구와 주민, 예술인 간의 협의를 통해 행사를 기획한다. 실내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서초실내악축제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소규모 콘서트 수만 170여 차례에 달한다.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악기 제작 체험 및 투어프로그램 등은 참가자 모집이 순식간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 있다. 바이올린 제작자 김민성 씨는 “음악에 아무 관심이 없던 아이들도 악기 제작 체험을 하고 공방 구경을 마치면 다들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한다”면서 “악기거리는 전문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음악과 친해지고 싶은 모든 시민을 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