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경제부 기자
지난해부터 전기요금 체계가 개편됐지만 여전히 “바뀐 줄 몰랐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연간으로 따지면 지난해 전기요금 변동 폭이 ‘0원’인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면서 전기요금은 3개월마다 유가와 천연가스 수입 가격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 지난해 국제유가는 출렁였지만 국내 전기요금은 지난해 1분기(1∼3월) kWh당 3원 내렸다가 4분기(10∼12월) 다시 3원 올랐을 뿐이다. 나머지 분기엔 정부가 뛰는 물가 등을 고려해 동결했다.
한국전력공사와 정부는 이달 20일까지 올해 2분기(4∼6월)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한다. 산식에 따른다면 인상이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로 들여오는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지난해 말보다 20% 넘게 상승했다.
정부는 올해 1분기 때처럼 동결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 참석해 “연료비 연동제는 이같이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고 설계됐다. 물가에 주는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인상에 따른 어려움을 표했다. 한전도 4월과 10월 두 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지난해 말 밝혔다. 3월 대선 이후 인상해 부담을 차기 정부로 떠넘기려는 셈이다.
공기업 부채는 사실상 정부가 갚아야 하는 나랏빚이다. 정부는 부채를 줄이고 한전에 적정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당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연료비 연동제 도입 후에도 나중에 갚아야 할 빚보다는 당장 피부에 와닿는 물가 부담을 우선시해 왔다.
연료비 연동제 정상화의 첫발은 전력 생산용 연료비에 따라 전기요금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원칙을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전기요금을 마냥 묶어 놓는다면 머지않아 인상 요인을 한 번에 반영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을 계속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급격한 인상은 당연히 가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전기요금 인상이 3% 넘는 물가 상승률로 힘든 취약계층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며 “유가 급등 시에는 소비자 보호 장치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저소득층에 전기·가스 요금을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등 여러 정책 수단을 함께 갖고 있다. 당국자들이 흔히 강조하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 조합)’로 전기요금을 올리면서도 다른 제도로 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어렵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