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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협업한 소설가, 다른 세상을 배웠다

입력 | 2022-03-02 03:00:00

에세이 ‘…입사했다’ 연재 박서련
배민 운영사서 업무체험 글 제안
두달간 업주-고객-직원 등 취재
“애용하던 기업이라 재미있었죠”



박서련 작가. 그는 “내 또래 1인 가구는 배달 음식 의존도가 높다”며 “자주 이용하던 기업의 속살이 궁금했다”고 했다. 박서련 작가 제공 ⓒ돌배


“방금 주문한 사람인데요. 제가 음식을 담을 용기를 가게로 가져가 포장해 오려 합니다.”

지난달 초 소설가 박서련(33)은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으로 매운 갈비찜을 주문한 뒤 가게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앱에선 포장 주문은 가능하지만 포장 용기를 고객이 선택하는 옵션은 없다. 그 대신 그는 앱 주문 시 가게 주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용기를 가져가겠다”고 쓰고 전화를 걸어 자신의 특별한(?) 요청을 알렸다. 그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가게에 간 뒤 자신의 냄비에 음식을 담아 와 먹었다. 그가 최근 배달 앱 회사가 운영하는 블로그 배민다움에 연재한 에세이 ‘소설가가 입사했다’의 내용이다.

지난달 28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배달 앱 회사와 협업하며 에세이를 쓰던 중 한식, 중식, 일식 가게에서 10번에 거쳐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는 시도를 했다”며 “매일 배달 앱을 이용하기에 환경 보호를 실천하려 했다”고 말했다.

“혼자 서울에서 자취하다 보니 배달 앱을 통해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엔 사용량이 더 늘었죠. 월 20회 이상 주문을 해 고객 등급 중 가장 높은 ‘천생연분’ 등급을 받을 정도여서 이런 생각이 났는지도 몰라요.”

박서련 작가가 배달의민족에서 받은 명예사원증. 박서련 작가 제공 ⓒ돌배

지난해 9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박 작가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소설가로서 회사에 가상으로 입사해 자유롭게 업무를 체험하고 글을 써달라는 것. 박 작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2개월 동안 취재했다. 음식가게 주인, 고객, 우아한형제들 직원 등 그가 만난 이들은 40여 명. 그는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회사 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채식 주문이 얼마나 많은지를 5편의 에세이로 풀었다. 고객이 음식을 주문하고 받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다투며 치열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담았다.

지난해 젊은작가상을 받은 순수문학 작가로서 기업과의 협업에 부담은 없었는지 묻자 그는 자신 있게 답했다.

“애용하던 기업에 관해 자유롭게 썼는데 꺼릴 것이 뭐가 있나요. 이 에세이는 해당 배달 앱이 최고라고 외치는 ‘용비어천가’가 아니에요. 기업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없었는데 세상에 대해 배우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