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 러, 민간인에 대량살상무기까지
“어린이 3명을 포함한 가족 5명이 차에서 산 채로 불탔다. (러시아군의) 공격 하루 만에 민간인이 적어도 9명 숨지고 37명이 크게 다쳤다.”(이고르 테레호프 하리코프 시장)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리코프의 민간인 거주 구역에 러시아군이 미사일 공격과 포격을 가했다. 이 포격에 집속탄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리코프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살포한 집속탄에 이른바 ‘나비 지뢰’가 담겨 있었다는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진공 폭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진공 폭탄은 ‘악마의 무기’라고 불린다. 모두 국제법으로 사용이 금지된 무기다. 미국 백악관은 진공 폭탄 사용 여부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사실이라면 전쟁범죄”라고 했다.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고도 초기 고전을 면치 못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민간인에게까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등 공격 강도를 높이면서 침공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러 미사일, 우크라 하리코프 주정부 청사 폭격 1일(현지 시간) 오전 8시 1분 52초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리코프 중심 주정부 청사와 ‘자유의 광장’에 러시아군 미사일(점선 안)이 떨어지고 있다(위쪽 사진). 미사일이 적중한 청사와 옆 건물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가운데 사진). 화염이 가라앉은 뒤 자유의 광장에 새까맣게 타버린 차량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이 공격으로 적어도 10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하리코프 시장은 “하리코프는 포위됐다”고 밝혔다. 트위터 화면 캡처·하리코프=AP 뉴시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한 민족이라는 푸틴의 주장에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죽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민간인 공격은 침공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자 조바심을 느낀 데서 비롯됐다는 것. 영국 BBC는 “러시아의 ‘좌절’이 더 무자비하게 공격하도록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침공 초이긴 하지만 예상 밖으로 고전 중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침공 나흘 이내에 키예프 등 주요 거점이 함락될 것으로 봤지만 결사 항전에 막혀 애를 먹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료 탄약 식량 등 병참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진격이 늦춰지는 사례도 발생했다. 연료가 없어 멈춰 선 러시아 탱크를 찍은 영상이 여기저기 나왔다. 3월 날씨가 따뜻해지면 얼었던 토양이 진흙탕으로 변해 전차 이동이 쉽지 않아 서두른다는 분석도 있다.
NBC는 미 정보당국을 인용해 “푸틴이 침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것에 분노하며 측근들을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초기 작전에 실패한 푸틴이 과거 체첸이나 시리아 내전에서처럼 대량살상무기로 민간을 가리지 않는 고강도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CNN은 미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푸틴은 대부분의 참모로부터 단절됐다. 자신의 분노를 달래줄 아첨꾼들과만 대화한다”고 전했다.
이날 첫 휴전회담에서 합의에 실패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조만간 2차 회담을 열기로 했다.
집속탄폭탄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개의 소형 폭탄이 폭발할 때 사방으로 퍼져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모자(母子) 폭탄’으로도 불린다.
나비 지뢰옛 소련이 개발한 나비 모양의 지뢰로 파편을 사방으로 터뜨려 살상 효과가 크다. 장난감으로 오인한 아이들이 주로 피해를 입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무기’로 불린다.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